2023년 3월 2일 (불기 2567년)
인도순례 22일차, 바이샬리를 떠나 다르파리까지 행선하다.
쿠시나가라로 가는 길. 부처님께서는 80세 되던 해 영축산에서 내려와 죽림정사 파트나를 거쳐 바이샬리로 오셨다. 그해 이 지역에 가뭄이 크게 들었다. 주민들도 가뭄으로 먹을 것이 부족하므로 500명의 비구에게 모두 흩어지라 하시고 당신도 아난다 존자만 데리고 벨루바 마을에 가셨다. 우안거를 나는데 많이 편찮으셨다. 아난다는 혹시 안거 중에 열반하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부처님께서 아난다의 마음을 알고 수명을 더 연장해서 안거를 넘겼다. 안거가 끝나자 대림정사 ‘중각당’으로 다들 모이게 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대들은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러야 합니다.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러야 합니다.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자등명 자귀의, 법등명 법귀의’다. 부처님께서는 3개월 후 열반에 드실 것이라 선언하시고 마지막 길을 떠나셨다. 35세에 성도 하신 후 45년간 영축산 죽림정사에 머무시며 바이샬리를 거쳐 고향인 카필라바스투, 쉬라바스티의 기원정사를 오가셨던 길. 순례단은 쿠시나가라로 가는 6일 동안 야외에서 묵어야 한다. 그동안 길게는 5일, 짧게는 2일을 야외에서 자고 호텔에서 밀린 빨래와 샤워를 해왔다. 고빈드푸르, 키다르푸르, 네그람푸르를 거쳐 이날 묵는 다르파리 역시 다른 야외 숙영지처럼 흙먼지 투성이다. 한편, 저녁 예불을 마치고, 회주 스님을 비롯한 순례단 스님, 신도들이 다르파리 마을 대표 경찰관, 의료진, 교사 등과 함께 한국과 인도 만남을 기념하는 보리수와 망고나무를 공동 식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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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결사 인도순례 22일차] 작은 것에도 행복해 하는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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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일 (불기 2567년)
인도순례 21일차, 비구니 스님이 최초 탄생한 바이샬리에 도착하다.
3.1절을 맞아 태극기와 인도 국기를 양손에 들고 길을 나서다. 순례가 절반을 넘어가는, 반결제半結制 날. 초반기 장염 감기 무릎 발목 등 발걸음을 더디게 했던 상처들은 거의 아물다. 이날은 비구니 스님이 최초 탄생한 바이샬리 순례일. 그 의미를 새겨 아침 공양 후 불상 이운을 비구니스님들이 맡다. 비구니 조인 제6조 조장 묘수스님이 첫 주자로, 이어서 덕진스님, 지해스님, 선해스님, 원해스님, 원준스님, 정혜스님, 해인스님, 도연스님 순. 이날 행선은 부처님께서 라즈기르에서 바이샬리를 오가시던 길을 따라 랄간지 샤흐둘라푸르 샤흐자한푸르를 지나 25km를 걸어 바이샬리 근본사리탑 터에서 회향하다. 부처님 사리를 8개국으로 배분할 때 바이샬리의 리차비 사람들이 받아왔다는 사리를 모셨던 곳인데, 사리용기는 파트나 박물관에 보관하고 터만 남아 있다. 점심 공양 후 첫 여성 출가지 대림정사 터를 순례하다. 여성 출가 공덕을 기린 탑과 아쇼카 대왕 석주가 서 있고, 그 앞에 원숭이가 부처님을 위해 팠다고 전하는 연못도 조성돼 있다. 비구니스님들이 대림정사 주변을 둘러보며 감회에 젖다. 순례단은 부처님의 ‘영원한 시자’ 아난다 존자 탑을 찾아 천도재를 봉행하다. 순례 동안 가슴에 품고 이운하는 불상을 모시고, 총도감 호산스님의 독경에 맞춰 호국 영가를 비롯한 튀르키예 지진 피해자, 전쟁 피해자 영가를 천도하다. 순례단이 걸어온 길은 총 51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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