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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불기 2544년)
중앙승가대의 김포학사 이전 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
대책위 위원장 영담스님, 위원 학담, 자승, 대원, 지홍, 정인, 무상, 원행, 원택, 성혜, 계성스님으로 구성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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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2월 17일 (불기 2544년)
제12대 중앙종회 의원으로 피선되다.
정대스님의 총무원장 취임으로 공석이 된 제2교구 직선 중앙종회의원에 단독 입후보해 무투표 당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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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6일 (불기 2543년)
과천종합사회복지관이 서울 금천구청이 공모한 가산종합사회복지관의 위탁운영 공모 신청을 철회, 천주교 하상장애인복지관에 양보하다.
스님이 하상장애인복지관장 김해리나 수녀와 대화 끝에 결단을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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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23일 (불기 2543년)
정대스님이 오전 9시30분 조계사 대웅전에서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 중앙종회사무처 조계사 종무원 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무원장 취임 고불식을 갖다.
제30대 총무원 집행부 첫 인사로 총무부장 원택스님, 문화부장 일철스님, 사회부장 양산스님, 호법부장 종지스님 등 4명의 부장 스님을 유임 발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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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15일 (불기 2543년)
조계종 제30대 총무원장으로 정대正大스님이 당선되다.
정대스님이 선거인단 재적과반수인 166표를 얻어 실천승가회를 이끌어온 지선知詵스님과 32표 차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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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5일 (불기 2543년)
법원으로부터 총무원장 직무집행 정지 가처분 판결을 받은 고산스님이 항소를 포기하고 총무원장직을 사퇴하다. 이에 따라 법원이 지정한 도견스님의 직무대행 효력이 취소되어 총무원 총무부장이 권한을 대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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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2일 (불기 2543년)
법원은 정화개혁회의 측이 총무원장 고산스님을 상대로 낸 총무원장 직무정지 가처분신청 사건에서 고산스님의 직무 집행을 정지하고 직무대행으로 도견 스님을 지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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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1일 (불기 2543년)
법원(서울지법 민사합의42부, 재판장 이수형 부장판사)이 정화개혁회의 측 정영스님이 총무원장 고산스님을 상대로 낸 총무원장직 부존재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하다. 판결문은 98년 12월 중앙종회가 종법상 공고절차를 거치지 않고 종회의원 81명 중 42명만을 모은 채 기존 선거절차를 무효화하는 내용의 총무원장 선거법을 개정한 만큼 개정 선거법은 무효라고 하다. 전 종정 월하스님 등이 낸 중앙종회 자격상실확인 청구소송에서는 원로회의의 종회 해산 명령은 재적의원 미달 상태에서 이뤄진 만큼 무효라며 원고 패소 판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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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 31일 (불기 2543년)
연주암이 주관하고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주최한 장애인 제주도 스쿠버다이빙 체험 '새로운 도전, 새로운 세상' 행사가 열리다.
전날 하반신이 불편한 15명의 장애인들이 과천중앙공원 야외무대에서 발대식을 갖고 제주도로 출발, 서귀포시 문섬 앞바다에서 이날 오전과 오후 한차례씩 조계종 스님들로 구성된 다이버모임 천수천안동우회와 제주 현지 다이버 등 자원봉사자와 함께 1대1로 짝을 이뤄 바다 속 비경을 체험하다. 바닷속 체험을 위해 참가자들은 8월 한 달 동안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수영장에서 주 4회씩 이론교육과 실기교육을 받았고, 연습과정부터 체험행사까지 MBC TV 「현장! 카메라 르포」와 KBS 2TV 「생방송 좋은 아침입니다」가 녹화방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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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 20일 (불기 2543년)
제29대 총무원(총무원장 고산스님) 재무부장에 임명되다.
제29대 총무원 출범한지 8개월여만에 집행부 부분 개편 인사가 단행되다. 스님이 재무부장에 선임되고, 총무부장 원택스님과 기획실장 만성스님, 호법부장 종고스님은 유임, 문화부장 일철스님, 사회부장 양산스님, 사서실장 성조스님이 전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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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2일 (불기 2543년)
혜암스님이 조계종 제10대 종정으로 추대되다.
원로회의 의장에는 탄성스님이 선출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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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29일 (불기 2542년)
조계종 제29대 총무원장에 고산스님이 당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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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23일 (불기 2542년)
정화개혁회의의 총무원 청사 점거 사태가 경찰 투입으로 43일만에 일단락되다. 한편, 29일로 예정된 총무원장 선거에 고산스님(쌍계사 주지)과 지선스님(백양사 주지)이 후보로 등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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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11일 (불기 2542년)
법원(서울지법 민사51부, 재판장 신영철 부장판사)이 조계종 총무원을 점거 중인 정화개혁회의에 퇴거를 명령하다. 또 법원은 중앙종회가 정화개혁회의 측 원로회의 의장을 상대로 낸 직무집행정지 신청도 받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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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6일 (불기 2542년)
중앙종회와 총무원 측 스님과 신도 등 1,500여 명이 오후 2시 서울 광화문빌딩 앞에서 '종헌종법 수호와 공권력 규탄 범불교도 대회'를 열다.
정화개혁회의 스님과 신도 700여 명은 조계사에서 '조계사 대웅전 방화 규탄 대회'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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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30일 (불기 2542년)
종헌종법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대회장 탄성스님)가 오후 2시30분 조계사 앞에서 스님 1,200여 명과 신도 등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다. 대회에 참석한 스님들은 월하 종정 불신임과 정화개혁회의의 즉각 해산 및 총무원 청사에서 철수, 총무원장 선거 실시 등을 결의하다. 대회를 마친 스님과 신도들이 총무원 청사 진입을 시도, 이를 저지하는 정화개혁회의 측 스님들과 폭력 사태가 벌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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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29일 (불기 2542년)
조계종 분규 사태 수습을 위해 원로회의 의장 탄성스님, 중앙종회 의장 법등스님, 정화개혁회의 상임위원 정우스님, 교구본사 주지연합회 법장스님 등이 △중앙종회와 정화개혁회의에서 동수로 참여하는 수습대책위 구성 △정화개혁회의 총무원 청사에서 철수 △전국승려대회 취소 △수습대책위 주관 아래 연말까지 총무원 선거 실시 등 13개항의 타협안에 합의하다. 하지만, 종정 월하스님이 타협안 수락을 거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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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20일 (불기 2542년)
중앙종회가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회의를 열어 승려대회 개최 결의를 재확인하고, 총무원 청사에 대한 공권력 집행을 촉구하는 대정부 규탄 성명을 발표하다.
총무원장 월주스님이 임기 만료에 앞서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맡을 총무부장에 도법道法스님을 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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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19일 (불기 2542년)
월주스님이 총무원장 후보를 사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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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16일 (불기 2542년)
중앙종회가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회의(제?회)를 열어 승려대회 개최를 재결의하고, 대회장에 원로회의 의장인 혜암스님 등 준비위원 인선을 확정하다. 14일 구룡사에 열린 원로회의는 원춴 무효라고 결의하다. 선거관리위원회법, 총무원장 선거법, 총무원장법을 개정하다. 회의에는 종회 재적의원 81명 중 53명이 참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