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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19일 (불기 2542년)
월주스님이 총무원장 후보를 사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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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16일 (불기 2542년)
중앙종회가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회의(제?회)를 열어 승려대회 개최를 재결의하고, 대회장에 원로회의 의장인 혜암스님 등 준비위원 인선을 확정하다. 14일 구룡사에 열린 원로회의는 원춴 무효라고 결의하다. 선거관리위원회법, 총무원장 선거법, 총무원장법을 개정하다. 회의에는 종회 재적의원 81명 중 53명이 참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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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14일 (불기 2542년)
원로회의 스님 7명이 서울 양재동 구룡사에서 종정 월하스님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중앙종회 해산과 월주 총무원장의 해임을 결의하다. 또 혜암 원로회의 의장을 제명하고, 새 의장에 벽암 부의장을 선출하다. 이날 원로회의는 총원 22명 중 7명이 참석, 8명의 위임장을 받다. 혜암스님은 원로회의 소집을 거부하여 불참했고,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아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다. 중앙종회 의장 법등스님도 원로회의법에 위배된다는 성명을 발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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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13일 (불기 2542년)
중앙종회(의장 법등法燈스님)가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서 회의(제?회) 열어 '정화개혁회의'가 총무원 건물을 점거한 것은 종헌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해산을 결의하고, 종단 분규가 계속될 경우 승려대회를 소집하기로 하다. 총무원장(월주스님)은 정화개혁회의 월탄스님 등 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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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12일 (불기 2542년)
종정 월하스님이 "제2의 정화불사가 내 뜻"이라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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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11일 (불기 2542년)
총무원장 선거를 하루 앞두고 총무원장 후보 월탄月誕스님을 지지하는 250여 명이 조계사에서 승려대회를 연 후 총무원 청사를 점거하고, 종정 월하스님의 총무원장 3선 반대 교시를 명분으로 종권을 위임받았다면서 '정화개혁회의'를 구성하다. 종헌 중단 사태가 벌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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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 (불기 2542년)
제29대 총무원장 선거에 월주月珠스님 3선 출마 여부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다. 월주스님은 80년 6개월여 간 총무원장(제17대)으로 재임한 바 있어 출마의사를 밝힌 다른 스님들이 "월주스님은 총무원장 3선에 해당하여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는 종헌에 위배된다"며 불출마를 종용하다. 반면, 월주스님 측은 "당시 신군부에 의해 강제 사퇴당한 것으로 94년 제정 공포된 종헌을 소급 적용할 수 없다"고 반발하다. 총무원장은 94년 종단 개혁을 통해 제정 공포된 종헌에 따라 전국 24개 교구에서 뽑은 선거인단 240명과 중앙종회의원 81명이 선출하는데, 교구본사 주지는 교구종회의원 2명을 포함해 선거인단 12명을 결정하도록 되어 있어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해 8개 교구에서 임기 만료로 치러진 주지 직접 선거는 총무원장 선거 대리전 양상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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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 (불기 2542년)
연주암의 환경친화적 불사와 무료 점심 공양이 회자되다.
스님이 주지에 부임한 이래 공사가 중단돼 있던 선불전을 천수관음전으로 바꿔 불사를 회향, 지하에는 현대식 주방시설과 식탁을 갖췄다. 공양간 한켠에 기도객들이 묵어갈 수 있는 방사를 지었고, 대중스님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요사채도 보수했다. 연주암 상징인 연주대에 기와불사와 종불사도 마쳤고, 효령대군 영정은 종각 위쪽에 효령각을 신축해 모셨다. 고지대라 겪는 식수난을 3년여에 걸친 시추 노력 끝에 암반수를 찾아 해결했고, 오폐수 및 화장실 자체 정화 시설을 만들었다. 또한, 사찰 토지를 무단 사용중이던 기상대 관측소를 철거시켰고, 군부대로부터 헬기장 유류고 등 1,500평을 반환받았다. 연주암 복원을 위해 관악사지 발굴사업을 추진하여 1250나한 조성불사와 함께 나한기도도량으로 가꿔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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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9일 (불기 2541년)
'민족문화 수호와 전법을 위한 조계종 지도자회의'가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교구본사 주지, 중앙종회의원, 수말사 주지 등 300여 스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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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 5일 (불기 2541년)
연주암 신도들의 신행활동을 독려하다.
연주암 신도들이 과천 등지 경로당에서 점심 공양과 무의탁 노인 성금 보시 관련해 스님이 "신도회의 자발적인 노력에 감사한다"며 "사찰에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기보다는 사회의 어두운 곳을 직접찾는 보살행이 참불자임"을 강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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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16일 (불기 2541년)
종회 의원 20여 명이 참여한 '조계종단 발전을 염원하는 중앙종회 의원 모임'(공동대표 정우스님 외 4명)이 총무원장 월주스님의 종단 운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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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3월 (불기 2541년)
종정 월하스님이 원로회의에 종정직 사표를 제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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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1월 22일 (불기 2540년)
'환경보존과 민족문화 수호를 위한 전국 본말사 주지 결의대회'가 오후 2시 조계사에서 열리다. 종단 산하 전국 본말사 주지스님 3천여 명과 신도 500여 명이 참석하다. 결의문을 통해 "가야산ㆍ모악산 등 전국의 사찰주변 자연환경이 행정관료와 기업가들에 의해 훼손되는 사태를 주목해왔다"며, 사찰 주변의 무분별한 개발 중단과 불교계에 대한 외부개입 배격을 요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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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1월 13일 (불기 2540년)
제11대 중앙종회(의장 설정스님) 후반기 사무처장에 임명되다.
종회에 화범스님의 사표 제출로 공석이었던 사무처장 임명동의안이 찬반투표에 붙여져 28표의 찬성으로 임명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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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1월 1일 (불기 2540년)
중앙종회 제123회 정기회에서 제11대 중앙종회 의장에 설정스님이 재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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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 25일 (불기 2539년)
중앙종회와 총무원 집행부, 실천승가회 소속 스님 471명이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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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17일 (불기 2539년)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스님이 태고종 총무원장 서봉스님과 만나 서울 봉원사, 백련사, 전남 선암사 등 10여 개 사찰을 둘러싼 두 종단의 분규 해결방안을 논의하다. 이들 사찰은 당시 법적으로 조계종 소유였으나 태고종이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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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8일 (불기 2538년)
개혁회의가 6개월 시한에서 2개월 연장한 활동을 마치고 해산하다. 개혁회의는 실천승가회와 선우도량 소속 스님들이 이끌었다. 총무원장 선거와 함께 개혁회의가 해산되자, 도법, 수경 등 선우도량의 중견 스님들은 산중으로 돌아가고, 남은 사람들은 종단정치의 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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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21일 (불기 2538년)
조계종 제28대 총무원장에 월주月珠스님을 선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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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17일 (불기 2538년)
제11대 중앙종회 의장에 설정雪靖스님을 선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