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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8일 (불기 2538년)
개혁회의가 6개월 시한에서 2개월 연장한 활동을 마치고 해산하다. 개혁회의는 실천승가회와 선우도량 소속 스님들이 이끌었다. 총무원장 선거와 함께 개혁회의가 해산되자, 도법, 수경 등 선우도량의 중견 스님들은 산중으로 돌아가고, 남은 사람들은 종단정치의 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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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21일 (불기 2538년)
조계종 제28대 총무원장에 월주月珠스님을 선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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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17일 (불기 2538년)
제11대 중앙종회 의장에 설정雪靖스님을 선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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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7일 (불기 2538년)
제11대 중앙과 교구 종회 의원들이 새로 피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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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일 (불기 2538년)
원로회의가 개혁회의에서 정한 새 종헌안을 인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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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9월 27일 (불기 2538년)
개혁회의가 중앙종회의원과 교구종회에서 선출하는 선거인단에 의한 총무원장 선출 및 본사주지 중앙종회 의원 겸직 금지 등을 담은 종헌 개혁안을 확정짓다. 개혁회의는 △정법종단의 구현 △불교자주화 실현 △종단운영의 민주화 △청정교단의 구현 △불교의 사회역할 확대 등 5대 지표를 설정하고 종단 개혁에 나서 총무원장 선거권을 320여 명으로 확대하고, 교구본사 주지, 중앙종회의원, 교구종회의원 등 종단의 주요 소임자를 직접 선거로 선출케 했다. 또, 종무행정 체계를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으로 분리해 각각의 역할을 전문성에 근거해 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총무원의 역할을 보완하고 독주를 견제할 수 있도록 중앙종회의 권한을 확대시켰다. 종회의원은 종단의 다른 주요 소임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대신 종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 대해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징계를 할 경우 종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그 지위를 보장했다. 사법기능인 호계원의 소관업무도 확대해 선거 관련 심판 등을 관장하게 하고, 특히 종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종단 안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종단 재정의 공개운영을 원칙으로 함을 종헌에 명문화하고, 사설사암의 종단 등록을 의무화하면서도 운영의 독립성을 인정토록 했다. 사찰이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선 감사기관의 조사를 거쳐 총무원의 허가를 얻도록 하고, 총무원이 종단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선 중앙종회의 동의를 얻게 했다. 참선수행 도량인 선원을 기초선원과 전문선원으로 구분하고, 기초선원 이수자는 종단의 기본교육 이수자와 동등 자격을 부여해 전문선원에 입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단일 계단을 운영하는 동시에 계를 받기 위해선 종단에서 정한 의무교육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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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5월 9일 (불기 2538년)
원로회의가 제9대 종정으로 월하스님을 추대하다.
개혁회의는 종정을 원로회의에서 추대하고, 임기는 5년, 1회만 재추대가 가능하도록 규정을 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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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26일 (불기 2538년)
서암스님이 종정직을 사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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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22일 (불기 2538년)
종회에서 전권을 위임받은 개혁회의가 99명의 의원을 확정 발표하고 집행부를 구성하는 등 종단개혁을 위한 활동에 착수하다.
개혁회의 탄성呑星스님이 제27대 총무원장직을 수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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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15일 (불기 2538년)
중앙종회가 제113회 임시회를 열어 개혁회의에 종단의 전권을 이양하고 제10대 중앙종회를 자진 해산하다. 이에 앞서 원로회의의 제27대 총무원장 선출 인준 거부에 따른 총무원장 불신임과 종정 불신임 건을 확인하고 의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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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13일 (불기 2538년)
의현스님이 총무원장 사퇴를 발표하고, 원로회의가 개혁회의를 인준하다. 경찰은 조계사에서 철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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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11일 (불기 2538년)
원로회의가 종단 비상사태를 선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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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10일 (불기 2538년)
전국승려대회가 오후 1시 조계사에서 스님 2,500여 명과 재가불자 1,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봉행되다. 4.10 조계사 승려대회에서 △종정 불신임 △총무원장 해임 및 모든 공직 박탈 △개혁회의 출범 등이 결의되다. 개혁회의 의장에 월하月下스님, 부의장에 설조雪照ㆍ종하스님이 추대되고, 상임위원장에 탄성呑星스님이 선임되다. 경찰이 재투입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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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9일 (불기 2538년)
종정 서암스님이 승려대회를 금한다는 교시를 발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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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5일 (불기 2538년)
혜암慧菴스님(원로회의 부의장)이 소집한 원로회의에서 총무원장 사퇴 및 4월 10일 승려대회 소집을 결의하다.
교수, 문인, 법조인, 언론인 등 각계 인사들의 폭력배 난동을 방관한 정부 비판과 총무원장 사퇴 요구가 잇따르는 가운데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지도자까지 사상 유례없는 종교탄압이라며 경찰을 강하게 비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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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3일 (불기 2538년)
종정 서암스님이 사태 수습을 위한 원로회의 소집 교시를 발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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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불기 2538년)
개혁회의 징계위에 승적 정정 문제로 회부되다.
징계위 회부는 정대스님과 함께 개혁회의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다. 개혁회의가 143명에 대해 징계를 결의해 그중 의현, 보일, 규필, 원두, 무성, 종원, 준제, 진암, 진경스님 등 9명에 대해서는 체탈도첩(멸빈)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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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 30일 (불기 2538년)
중앙종회가 제112회 임시회를 열어 제27대 총무원장으로 의현스님을 선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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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 29일 (불기 2538년)
새벽 6시30분 조계사에 총무원장 측이 동원한 폭력배 300여 명이 난입해 농성 중이던 범종추 스님들을 폭행하다. 이날 하루종일 총무원 청사를 두고 총무원 집행부 스님들과 범종추 스님들이 대립한 가운데 총무원의 요청으로 오후 6시40분 투입된 종로경찰서 소속 전경들에 의해 농성을 벌이던 범종추 스님들이 연행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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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 28일 (불기 2538년)
범종추 소속 스님과 신도들이 종단개혁을 위한 제2차 구종법회를 열고 농성을 계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