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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개의 검색 결과를 찾았습니다.

상세연보25

  • 1991년 9월 (불기 2535년)
    '정법수호회' 회장 자격으로 중흥회가 개최한 전국승려대회에 참가하다.
    당시 종정 추대 문제에서 비롯돼 총무원장 퇴진을 놓고 총무원(의현스님) 측과 반 총무원(중흥회 능혜스님 등) 측이 갈등을 빚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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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냐 조계종 내분「분종」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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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8년 3월 (불기 2532년)
    '대승불교승가회'에 참여하다.
    대승불교승가회는 1987년 6월항쟁 당시 불교계의 민주화 열기를 결집시킨 ‘정토구현전국승가회’(1986년 6월 5일 출범)의 맥을 잇는 승가조직이다. 송산松山, 종림宗林, 명진明盡, 자승慈乘, 종태宗跆, 성문性門, 현응玄應, 각신覺腎, 원택圓澤, 설봉雪峰, 주영周暎, 여연如然 스님 주도 아래 30~40대 선승과 학승 등 소장 승려 1백여 명이 참여했고, 초대 회장은 송산스님이 맡았다. 3월 25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소재 개운사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조직은 산하에 이념교육, 제도교육, 인권, 통일, 노동, 공해대책, 민족문화 등 7개 위원회를 구성하고 부설 민족불교연구소를 두었다. 88 서울올림픽 시기에 동국대석림회 등 10여 단체와 함께 ‘민족화합공동올림픽추진본부’를 결성하여 통일운동을 펼치면서 80년대 불교운동의 한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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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佛敎界(불교계)에 改革(개혁)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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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佛敎(불교) 사회참여운동에 새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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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의 오늘] 정토구현전국승가회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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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대중과 국민여러분에게 드리는 글 - 대승불교 승가회 창립 취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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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4년 5월 25일 (불기 2528년)
    수원포교당 주지를 맡다.
    수원포교당은 현재 수원사水原寺로 개명했으나 당시는 화광사華光寺로 불렸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92번지에 위치해 있다. 스님은 수원포교당 주지를 1986년 1월 23일까지 맡았다.

    수원포교당은 1920년 4월 8일 당시 용주사 주지 대련스님이 일반 대중들에게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법당과 관음전, 요사를 지은 게 시작이었다. 사찰 창건 이전 이곳에는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까지 수령 300년 정도의 느티나무가 있다. 당시 지은 법당이 현재의 극락대원전이며, 관음전이 현재의 정토수행관이다. 1927년 손계조 포교사가 옥돌관음상을 봉안했고, 1957년 화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4년 삼존불 후불탱화, 칠성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가 극락대원전에 봉안되었고, 1973년 정하스님이 석조아미타여래상을 조성하면서 법당을 중수, 단청했다. 1980년 법전스님이 삼존불을 개금했으며, 1981년 정락스님, 1984년 자승스님 노력으로 불교 포교의 중심 역할을 하는 전국 3대 포교당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관련사료
    〈34〉수원 수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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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사료
    대한불교조계종 수원사 사이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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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2년 7월 14일 (불기 2526년)
    이천 영월암映月庵 주지의 소임을 맡다.
    영월암은 경기도 이천시 설봉산 중턱 관고동 438번지에 위치한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스님은 영월암 주지를 그해 12월 16일까지 맡았다.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당시 절 이름은 북악사北嶽寺라 했었고, 조선 영조 50년(1774) 영월 낭규대사가 중창하고 영월암이라 고쳐 불렀다. 1911년 보은스님이 중건했고, 1941년 명칠스님이 대웅전을 중창했다. 현존하는 당우는 대웅전과 동별당ㆍ요사채 3동이다. 대웅전 앞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삼층석탑이 있고, 신라 때 것으로 추정되는 뛰어난 조각솜씨의 석조광배와 연화대좌(향토유적 제3호)가 있다. 연화대좌 위에는 근래 조성한 석조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대웅전 뒤편 바위에 조성된 보물 제822호인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절 입구에는 수령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다.
  • 1979년 (불기 2523년)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 봉정암에서 5개월여 동안 홀로 기도정진하다.
    군 제대 후 다시 출가자 본연의 삶으로 돌아가겠다는 원력에서 기도정진에 들어가다. 당시 봉정암은 함석 지붕의 인법당과 허름한 산신각, 작은 화장실이 전부였고, 눈이 내리면 사람의 키 높이까지 쌓이고 체감온도 영하 30~40도의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곳이었다. 맹추위에 새벽ㆍ오전ㆍ오후ㆍ저녁, 하루 4번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고, 그때마다 2시간씩 하루 8시간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서서 목탁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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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33·34대 총무원장 자승 스님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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