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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개의 검색 결과를 찾았습니다.

상세연보22

  • 1986년 9월 7일 (불기 2530년)
    해인사에서 열린 10.27법난 6주기 전국승려대회에 참가하다.
    대회에 모인 전국의 2천여 명의 스님들은 불교자주화와 사회민주화, 자주통일을 주장하다. 9.7 해인사 승려대회 집행위원장은 월주스님, 준비위원장 종하스님, 대회장은 해인사 주지 법전스님이 맡다. 대회는 해인사 부방장 혜암스님의 법어로 시작하여 대회사, 경과보고, 불교탄압 실태보고 순으로 진행되다. 이어 사회민주화와 민족자주권 수호를 위한 불교의 사회 참여를 천명하고, 지선스님의 선언문 낭독, 초우스님의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과 발원문, 결의문을 채택하다. 석림회 성조스님의 결의문 낭독 때 지광스님이 오른쪽 손가락 4개를 잘라 ‘불자여 눈을 떠라’라는 혈서를 쓰다. 이후 스님 1천여 명이 혈서와 피켓을 들고 3.5km 떨어진 가야산 국립공원 입구까지 행진하며 ‘불교재산관리법 철폐’, ‘독재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다. 또한, 자주적 민주적 불교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불교관계 악법 철폐와 10.27법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는 한편, 5.3인천사건으로 구속 수배 중인 불자들의 석방 및 정권의 불교 탄압 등에 강력 항의하다.
    관련사료
    승려2千(천)명海印寺(해인사)서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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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사료
    10.27 법난을 규탄하며 불교자주쟁취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자 - 10.27 법난 6주기를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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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4년 5월 25일 (불기 2528년)
    수원포교당 주지를 맡다.
    수원포교당은 현재 수원사水原寺로 개명했으나 당시는 화광사華光寺로 불렸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92번지에 위치해 있다. 스님은 수원포교당 주지를 1986년 1월 23일까지 맡았다.

    수원포교당은 1920년 4월 8일 당시 용주사 주지 대련스님이 일반 대중들에게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법당과 관음전, 요사를 지은 게 시작이었다. 사찰 창건 이전 이곳에는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까지 수령 300년 정도의 느티나무가 있다. 당시 지은 법당이 현재의 극락대원전이며, 관음전이 현재의 정토수행관이다. 1927년 손계조 포교사가 옥돌관음상을 봉안했고, 1957년 화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4년 삼존불 후불탱화, 칠성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가 극락대원전에 봉안되었고, 1973년 정하스님이 석조아미타여래상을 조성하면서 법당을 중수, 단청했다. 1980년 법전스님이 삼존불을 개금했으며, 1981년 정락스님, 1984년 자승스님 노력으로 불교 포교의 중심 역할을 하는 전국 3대 포교당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관련사료
    〈34〉수원 수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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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사료
    대한불교조계종 수원사 사이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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