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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2일 (불기 2552년)
경기 화성 용주사에서 정대스님 5주기 추모법회가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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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4일 (불기 2552년)
경기 화성 용주사에서 봉행된 사도세자(조선 장조)의 제246주기 제향의식에 참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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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14일 (불기 2550년)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가 산중총회를 열어 정호스님을 신임 주지후보를 합의 추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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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1일 (불기 2548년)
중앙종회의원 스님들 중심으로 한 승가모임 ‘화엄회’에 참여해 운영위원장을 맡다.
화엄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타워호텔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활동에 들어가다. 창립선언문에서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바탕으로 원융종단의 화합 승가를 구현하기 위해 결사의 마음으로 모였다”며 “갈등과 반목을 없애고 생산적이고 합리적이며 평등한 대중공의를 통해 종단의 발전과 화합승가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히다. 이를 위해 △중앙과 교구의 협력체계 강화 △다양한 종단 재정 확충 △공정한 인사제도 마련 △불교 인재 양성 △승려노후복지 실현 △국제화 인터넷 시대 포교 △불교교세의 지역별 연령별 불균형 극복 △종무행정 평가시스템 구현 △종도 여론 수렴 △사회문제의 불교적 해결 등 10대 사업과제를 제시하다. 고문으로는 용주사 주지 정락스님, 법주사 주지 도공스님, 불국사 주지 종상스님, 화엄사 주지 명섭스님, 선운사 주지 범여스님, 관음사 주지 용주스님, 회장은 장주스님, 수석부회장 인행스님, 운영위원장 자승스님, 운영위위원회 간사 광조스님, 총무간사 도완스님, 대변인 정안스님이 맡다. 당시 중앙종회 종파로는 금강회와 보림회, 실천승가회, 직지사단의 연합체인 원융회, 10여 명의 무당파 의원들이 있었다.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당선에 일조한 실천승가회와 직지사단 연합체인 원융회, 구여권 종회 의원들, 불국사 종상스님 쪽과 원담스님 등 무당파 의원들을 끌어들여 일승회를 결성했다. 일승회 회원 수는 전체 81명의 종회의원 중 40명 남짓의 과반수를 차지했으나 결속력이 약해 종헌 개정 같은 특별 안건뿐 아니라 일반 안건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게다가 총무원 집행부는 동국학원 재단이사회 이사장 선거나 원로회의 의장선거 등 주요한 선거에서 뜻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일승회 종회의원들이 화엄회로 분가했다. 이후 화엄회는 종회 의원 외에 종책 개발과 실천에 관심 있는 스님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여 종책 자료집 발간과 종책 포럼을 열었다. 또한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 지원과 캄보디아,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의 저소득계층에게 한국불교의 보살심을 전하고, 국제포교 사업을 독자 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로터스 월드와 지구촌공생회 등 교계 국제불교 단체 지원으로 확장했다.
관련사료
종회의원 절반‥현 총무원장 당선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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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23일 (불기 2547년)
정대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장이 봉행되다.
용주사 주지 정락스님, 장의위원회 호상 정휴스님, 동국학원 이사 장윤스님, 상좌 성주ㆍ자승ㆍ성월ㆍ성운 스님 등 100여 명이 참석하다. 장의위원회가 법구에 대한 습골 후 몸에서 나온 사리를 수습해 공개하고, 유골은 정대스님이 평소 주석하던 안양 삼막사 월암당에 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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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10일 (불기 2538년)
관악산 연주암戀主庵 주지에 임명되다.
연주암은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 연주봉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의 말사이다. 통일신라 677년(문무왕 17)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관악사冠岳寺라 하였다. 조선 개국 1392년(태조 1)에는 이성계가 의상대를 중건하고 그의 처남인 강득룡과 서견ㆍ남을 등이 이곳에서 송도를 바라보며 고려왕조를 연모하면서 통곡하였기 때문에 연주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1396년에는 연주암을 신축하였고, 1411년(태종 11)에는 효령대군이 이건하여 중건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868년(고종 5)에 명성황후의 하사금으로 극락전과 용화전을 중수하였고, 1883년에 대방을 중수하고 기와불사를 하였다. 1886년에는 행문幸文이 법당과 나한전을 중수하였고, 1918년에는 경산慶山이, 1929년에는 재운在芸이, 1936년에는 교훈敎訓이 중수하였다. 1975년 송원松園이 대웅전을 신축하였고, 1979년에 연주대와 삼성각을 중수하였으며, 1981년 요사 개축, 1996년 관음전 개축, 2003년 영산전 중수, 2005년 연주대를 대수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관음전, 영산전, 연주대(응진전), 삼성각 등을 비롯하여 효령대군의 진영을 봉안한 효령각이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시도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은 고려 후기 때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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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 18일 (불기 2535년)
안양 삼막사三幕寺 주지를 맡다.
삼막사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삼성산(석수1동 241ㆍ54)에 있는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스님은 삼막사 주지를 1994년 1월 18일까지 맡았다.
삼막사는 통일신라 677년(문무왕 17) 원효ㆍ의상ㆍ윤필 3대사가 관악산에 들어와 막을 치고 수도하다가 지은 사찰이다. 기록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신라 말 도선이 중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개칭했다고 한다. 이후 고려 태조가 중수하여 삼막사라 하였고, 1348년(충숙왕 4) 나옹이 이 절에 머무르면서 수도하였다. 조선 개국 때인 1394년(태조 3)에는 왕사 무학이 이 절에서 국운의 융성을 기원했는데, 이러한 인연으로 1398년 왕명에 의해 중건되었다. 그 뒤 몇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쳐 1880년(고종 17) 의민이 명부전을 짓고 이듬해 칠성각을 지은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해 명부전ㆍ망해루ㆍ대방ㆍ요사ㆍ칠성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무학대사가 석조기둥으로 중수한 다포계양식 건물이며, 내부에 봉안된 탱화와 범종은 광무연간에 제작된 것이다. 청명한 날 망해루에서는 서해가 보이고, 명부전 십대왕상은 이 절의 보물이다. 이밖에도 높이 2.55미터의 삼층석탑과 거북모양의 감로정석조가 있으며, 자연암석에 양각한 아미타삼존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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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월 28일 (불기 2532년)
용인 대덕사大德寺 주지를 맡다.
대덕사는 스님이 함대덕상보살과 1983년 설립한 절이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 기곡로 29-13(하갈동)에 위치해 있으며, 1988년 1월 조계종 사찰로 등록되었디. 현재는 용주사 말사로 수원과 용인 지역의 포교, 교육도량으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 스님은 대덕사 주지를 1991년 3월 18일까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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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25일 (불기 2528년)
수원포교당 주지를 맡다.
수원포교당은 현재 수원사水原寺로 개명했으나 당시는 화광사華光寺로 불렸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92번지에 위치해 있다. 스님은 수원포교당 주지를 1986년 1월 23일까지 맡았다.
수원포교당은 1920년 4월 8일 당시 용주사 주지 대련스님이 일반 대중들에게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법당과 관음전, 요사를 지은 게 시작이었다. 사찰 창건 이전 이곳에는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까지 수령 300년 정도의 느티나무가 있다. 당시 지은 법당이 현재의 극락대원전이며, 관음전이 현재의 정토수행관이다. 1927년 손계조 포교사가 옥돌관음상을 봉안했고, 1957년 화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4년 삼존불 후불탱화, 칠성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가 극락대원전에 봉안되었고, 1973년 정하스님이 석조아미타여래상을 조성하면서 법당을 중수, 단청했다. 1980년 법전스님이 삼존불을 개금했으며, 1981년 정락스님, 1984년 자승스님 노력으로 불교 포교의 중심 역할을 하는 전국 3대 포교당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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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7월 14일 (불기 2526년)
이천 영월암映月庵 주지의 소임을 맡다.
영월암은 경기도 이천시 설봉산 중턱 관고동 438번지에 위치한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스님은 영월암 주지를 그해 12월 16일까지 맡았다.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당시 절 이름은 북악사北嶽寺라 했었고, 조선 영조 50년(1774) 영월 낭규대사가 중창하고 영월암이라 고쳐 불렀다. 1911년 보은스님이 중건했고, 1941년 명칠스님이 대웅전을 중창했다. 현존하는 당우는 대웅전과 동별당ㆍ요사채 3동이다. 대웅전 앞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삼층석탑이 있고, 신라 때 것으로 추정되는 뛰어난 조각솜씨의 석조광배와 연화대좌(향토유적 제3호)가 있다. 연화대좌 위에는 근래 조성한 석조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대웅전 뒤편 바위에 조성된 보물 제822호인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절 입구에는 수령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