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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연보292

  • 2007년 10월 19일 (불기 2551년)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대법회'를 봉행하다.
    종정 법전스님과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비롯한 사부대중 1만여 명이 참가해 '봉암사鳳巖寺 결사' 정신을 되살려 어수선해진 종단 분위기를 쇄신하자는 참회와 자정의 목소리를 내다. 봉암사 결사는 왜색불교의 폐습이 남아 있던 1947년 청담, 성철, 자운 스님 등이 "부처님 법대로 살자"며 펼친 불교계 혁신 운동이다. 이날 법회에는 봉암사 결사 당시 수행종풍을 세우기 위해 마련한 18개 항의 '공주규약共住規約'과 선언문이 낭독되고, 참회문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실천하지 못해 세상의 빛이 되지 못했다"면서 "지금의 위기와 고난이 졸음을 깨우는 죽비 소리임을 알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다"고 밝히다. 이어 봉암사 결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3대 실천지침으로 △일체의 명리를 버리고 본분에 충실하며 △수행을 생활화ㆍ사회화하고 △국민 모두 주어진 직분에 충실할 것을 제시하다. 참가자들이 참회를 위해 일제히 좌선 입정의 시간을 가진데 이어 종정 법전스님은 법어를 통해 "여기 모인 대중은 역순逆順을 자제하는 기틀로 곧은 것과 굽은 것을 모두 놓아버리면, 시방十方의 종지宗旨가 한 곳으로 모일 것이요, 정正과 사邪의 시비是非가 원융圓融을 이룰 것"이라며 출가수행자의 본분을 지켜 세상의 시비에 초연할 것을 당부하다. 봉암사는 백두대간의 허리인 희양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곳에 자리잡은 조계종 종립특별선원으로 선승들의 수행 환경을 지키기 위해 25년간 산문을 폐쇄해 왔다.
    관련사료
    “오늘은 新결사 조직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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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10월 13일 (불기 2551년)
    북한 금강산 신계사 낙성법회에 참석하다.
    낙성식에는 남측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 포교원장 혜총스님, 중앙종회의장 자승스님, 중앙신도회 김의정 회장,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스님, 유홍준 문화재청장, 현대아산 윤만준 사장, 북측 유영선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장 등 남북 불교도 400여 명이 참석하다. 전날(12일)에는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증명법사로 ‘금강산 신계사 부처님 봉안 점안식’이 봉행되다. 신계사神溪寺는 신라 법흥왕 때(519년) 보운스님이 창건한 고찰이다. 장안사, 유점사, 표훈사와 더불어 금강산 4대 명찰로 꼽힌다. 임진왜란 때 서산ㆍ사명대사가 승군을 일으켜 지휘한 곳이고, 근대에 와서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스님이 출가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됐는데, 남북 공동으로 발굴조사 등을 거쳐 2004년부터 복원불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 11월 대웅보전 낙성식을 가진 데 이어 만세루, 산신각, 칠성각, 종각, 나한전, 극락전, 어실각, 요사채 등을 차례로 복원했고, 2007년 부처님 봉안과 단청작업 등 주변 정리를 마쳐 4년여에 걸친 복원 불사를 마무리했다.
    관련사료
    금강산 신계사 천년고찰 면모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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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11월 16일 (불기 2549년)
    제32대 총무원(총무원장 지관스님) 총무부장에 임명되다.
    스님은 임명장 수여 후 기자들과 만나 "종단화합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동국대 이사와 통도사 방장 문제를 원만하게 풀겠다"고 밝히다.
    제32대 총무원 집행부로 재무부장 정만正滿스님, 사회부장 지원志源스님, 호법부장 서리에 도진道眞스님, 사서실장 심경스님이 각각 임명되다.
    관련사료
    동국대 ㆍ 통도사 문제 풀어 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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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10월 31일 (불기 2549년)
    조계종 제32대 총무원장으로 지관스님이 취임하다.
  • 2005년 10월 5일 (불기 2549년)
    제32대 총무원장 추대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다.
    추대 상임위가 차기 총무원장 후보로 지관, 설정, 도영 스님으로 압축하고, 이중 1명을 최종 후보로 추대하기로 하다. 추대 상임위 위원장은 동화사 주지 지성스님, 부위원장은 스님과 장윤스님이 선출되다.
  • 2005년 9월 11일 (불기 2549년)
    총무원장 권한대행에 현고스님이 임명되다.
  • 2004년 10월 21일 (불기 2548년)
    중앙종회의원 스님들 중심으로 한 승가모임 ‘화엄회’에 참여해 운영위원장을 맡다.
    화엄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타워호텔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활동에 들어가다. 창립선언문에서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바탕으로 원융종단의 화합 승가를 구현하기 위해 결사의 마음으로 모였다”며 “갈등과 반목을 없애고 생산적이고 합리적이며 평등한 대중공의를 통해 종단의 발전과 화합승가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히다. 이를 위해 △중앙과 교구의 협력체계 강화 △다양한 종단 재정 확충 △공정한 인사제도 마련 △불교 인재 양성 △승려노후복지 실현 △국제화 인터넷 시대 포교 △불교교세의 지역별 연령별 불균형 극복 △종무행정 평가시스템 구현 △종도 여론 수렴 △사회문제의 불교적 해결 등 10대 사업과제를 제시하다. 고문으로는 용주사 주지 정락스님, 법주사 주지 도공스님, 불국사 주지 종상스님, 화엄사 주지 명섭스님, 선운사 주지 범여스님, 관음사 주지 용주스님, 회장은 장주스님, 수석부회장 인행스님, 운영위원장 자승스님, 운영위위원회 간사 광조스님, 총무간사 도완스님, 대변인 정안스님이 맡다. 당시 중앙종회 종파로는 금강회와 보림회, 실천승가회, 직지사단의 연합체인 원융회, 10여 명의 무당파 의원들이 있었다.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당선에 일조한 실천승가회와 직지사단 연합체인 원융회, 구여권 종회 의원들, 불국사 종상스님 쪽과 원담스님 등 무당파 의원들을 끌어들여 일승회를 결성했다. 일승회 회원 수는 전체 81명의 종회의원 중 40명 남짓의 과반수를 차지했으나 결속력이 약해 종헌 개정 같은 특별 안건뿐 아니라 일반 안건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게다가 총무원 집행부는 동국학원 재단이사회 이사장 선거나 원로회의 의장선거 등 주요한 선거에서 뜻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일승회 종회의원들이 화엄회로 분가했다. 이후 화엄회는 종회 의원 외에 종책 개발과 실천에 관심 있는 스님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여 종책 자료집 발간과 종책 포럼을 열었다. 또한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 지원과 캄보디아,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의 저소득계층에게 한국불교의 보살심을 전하고, 국제포교 사업을 독자 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로터스 월드와 지구촌공생회 등 교계 국제불교 단체 지원으로 확장했다.
    관련사료
    종회의원 절반‥현 총무원장 당선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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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2월 24일 (불기 2547년)
    조계종 제31대 총무원장에 법장스님이 선출되다.
  • 2003년 1월 15일 (불기 2547년)
    정대스님이 총무원장직을 내려놓다.
    총무원장 권한대행에 선용스님이 임명되다.
  • 2000년 2월 17일 (불기 2544년)
    제12대 중앙종회 의원으로 피선되다.
    정대스님의 총무원장 취임으로 공석이 된 제2교구 직선 중앙종회의원에 단독 입후보해 무투표 당선되다.
  • 1999년 11월 25일 (불기 2543년)
    제30대 총무원(총무원장 정대스님) 재무부장에 재임명되다.
    총무원장 정대스님은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종단 화합을 강조하고, 애종심을 갖고 종무행정에 임해 줄 것을 당부하다. 총무원 기획실장에 지원스님(송광사 주지) 임명.
  • 1999년 11월 23일 (불기 2543년)
    정대스님이 오전 9시30분 조계사 대웅전에서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 중앙종회사무처 조계사 종무원 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무원장 취임 고불식을 갖다.
    제30대 총무원 집행부 첫 인사로 총무부장 원택스님, 문화부장 일철스님, 사회부장 양산스님, 호법부장 종지스님 등 4명의 부장 스님을 유임 발령하다.
  • 1999년 11월 15일 (불기 2543년)
    조계종 제30대 총무원장으로 정대正大스님이 당선되다.
    정대스님이 선거인단 재적과반수인 166표를 얻어 실천승가회를 이끌어온 지선知詵스님과 32표 차가 나다.
  • 1999년 11월 14일 (불기 2543년)
    조계종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총무원장 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하다. 개정 선거법은 중앙종회의원 81명과 전국 교구본사에서 선출된 240명의 선거인 등 321명의 무기명 비밀투표로 총무원장을 선출하도록 정하다.
  • 1999년 10월 12일 (불기 2543년)
    중앙종회가 제144회 임시회를 열어 종법에 의거 총무원장 권한대행으로 원택圓澤스님(총무원 총무부장)을 선출하다. 총무원장 선거법을 개정하여 법원 판결에 따라 무효가 된 총무원장 선거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하기로 결의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 등을 새로 선출하다.
  • 1999년 10월 5일 (불기 2543년)
    법원으로부터 총무원장 직무집행 정지 가처분 판결을 받은 고산스님이 항소를 포기하고 총무원장직을 사퇴하다. 이에 따라 법원이 지정한 도견스님의 직무대행 효력이 취소되어 총무원 총무부장이 권한을 대행하다.
  • 1999년 10월 2일 (불기 2543년)
    법원은 정화개혁회의 측이 총무원장 고산스님을 상대로 낸 총무원장 직무정지 가처분신청 사건에서 고산스님의 직무 집행을 정지하고 직무대행으로 도견 스님을 지정하다.
  • 1999년 10월 1일 (불기 2543년)
    법원(서울지법 민사합의42부, 재판장 이수형 부장판사)이 정화개혁회의 측 정영스님이 총무원장 고산스님을 상대로 낸 총무원장직 부존재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하다. 판결문은 98년 12월 중앙종회가 종법상 공고절차를 거치지 않고 종회의원 81명 중 42명만을 모은 채 기존 선거절차를 무효화하는 내용의 총무원장 선거법을 개정한 만큼 개정 선거법은 무효라고 하다. 전 종정 월하스님 등이 낸 중앙종회 자격상실확인 청구소송에서는 원로회의의 종회 해산 명령은 재적의원 미달 상태에서 이뤄진 만큼 무효라며 원고 패소 판결하다.
  • 1999년 8월 20일 (불기 2543년)
    제29대 총무원(총무원장 고산스님) 재무부장에 임명되다.
    제29대 총무원 출범한지 8개월여만에 집행부 부분 개편 인사가 단행되다. 스님이 재무부장에 선임되고, 총무부장 원택스님과 기획실장 만성스님, 호법부장 종고스님은 유임, 문화부장 일철스님, 사회부장 양산스님, 사서실장 성조스님이 전보되다.
  • 1998년 12월 30일 (불기 2542년)
    원로회의(의장 혜암스님)가 총무원장 당선자 고산스님을 인준하다. 또 지난 11.30 승려대회에서 결의한 월하 종정 불신임과 정화개혁회의 월탄ㆍ현호스님 중징계를 추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