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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5일 (불기 2550년)
조계종 군종특별교구 상임위원으로 위촉되다.
당해 출범한 조계종 군종특별교구의 상임위원회는 최고 심의의결기구인 상임위원회는 군종교구본사 주지 일면스님, 부주지 계성스님을 비롯 모두 21명으로 구성되다. 위원은 종회의원, 종단 교역직 종무원, 불교 언론사 사장 등과 군불교 현장에서 포교에 매진하고 있는 육해공군 영관급 현역 군승들로 위촉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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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5일 (불기 2549년)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제4회 장학금 수여식’을 갖고, 신용불량자에게 희망격려금을 지급하다.
제4회 은정 장학금은 대학생 28명, 고등학생 19명, 초중생 12명에게 1억 2,015만 원을 수여하고, 생활격려금으로 소년소녀가장 6명, 독거노인 4명, 신용회복자 20명에게 3,300만 원을 지원하다. 학술연구지원금은 가산불교문화연구원에 1,000만 원, 단체 지원금은 대학생불교연합회, 불교인권위원회, 보조사상연구원에 각 300만 원, 동국대 농구부에 600만 원 등 각각 지원해 모두 1억 7,950만 원이었다.
관련사료
은정불교진흥원, 1억7천만원 장학금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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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5일 (불기 2549년)
제32대 총무원장 추대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다.
추대 상임위가 차기 총무원장 후보로 지관, 설정, 도영 스님으로 압축하고, 이중 1명을 최종 후보로 추대하기로 하다. 추대 상임위 위원장은 동화사 주지 지성스님, 부위원장은 스님과 장윤스님이 선출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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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23일 (불기 2549년)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진상조사특별위원장에 선출되다.
동국학원 박아무개 감사가 "학교 측이 필동병원(중앙대 부속병원)을 매입하면서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했다"고 지적하면서 관계자의 징계 및 시정을 요구했다. 대학(홍기삼 총장) 측은 "매입 가격은 세금 등을 포함한 적정가격"이라는 입장이었다. 종단에서는 스님을 위원장으로 지홍ㆍ향적ㆍ종훈ㆍ장적ㆍ도완ㆍ이암ㆍ정도ㆍ토진ㆍ효림ㆍ본각스님 11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조사에 나서는 한편, 교육부에 특별감사를 요구했고, 검찰 조사도 진행됐다. 위원회는 진상조사 결과를 종회에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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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0일 (불기 2548년)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제3회 은정장학금 수여식’을 갖다.
서울 타워호텔 만복림에서 열린 ‘제3회 은정장학, 학술연구지원, 생활격려금 증서수여식’에서 대학생 등 40명에게 장학금 8,400만 원과 소년소녀가장 11명 및 독거노인 3명에게 생활격려금으로 2,400만 원을 지원하고, 학술연구지원금으로 가산불교문화연구원에 2,000만 원, 대학생불교연합회와 불교인권위원회에 단체지원금 1,100만 원 등 모두 1억3900만원을 지급하다. 이사장인 스님은 2004년 10월 효령대상 부상으로 받은 1,900만 원 전액을 지원금으로 기부하다.
관련사료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장학금 1억39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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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1일 (불기 2548년)
중앙종회의원 스님들 중심으로 한 승가모임 ‘화엄회’에 참여해 운영위원장을 맡다.
화엄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타워호텔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활동에 들어가다. 창립선언문에서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바탕으로 원융종단의 화합 승가를 구현하기 위해 결사의 마음으로 모였다”며 “갈등과 반목을 없애고 생산적이고 합리적이며 평등한 대중공의를 통해 종단의 발전과 화합승가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히다. 이를 위해 △중앙과 교구의 협력체계 강화 △다양한 종단 재정 확충 △공정한 인사제도 마련 △불교 인재 양성 △승려노후복지 실현 △국제화 인터넷 시대 포교 △불교교세의 지역별 연령별 불균형 극복 △종무행정 평가시스템 구현 △종도 여론 수렴 △사회문제의 불교적 해결 등 10대 사업과제를 제시하다. 고문으로는 용주사 주지 정락스님, 법주사 주지 도공스님, 불국사 주지 종상스님, 화엄사 주지 명섭스님, 선운사 주지 범여스님, 관음사 주지 용주스님, 회장은 장주스님, 수석부회장 인행스님, 운영위원장 자승스님, 운영위위원회 간사 광조스님, 총무간사 도완스님, 대변인 정안스님이 맡다. 당시 중앙종회 종파로는 금강회와 보림회, 실천승가회, 직지사단의 연합체인 원융회, 10여 명의 무당파 의원들이 있었다.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당선에 일조한 실천승가회와 직지사단 연합체인 원융회, 구여권 종회 의원들, 불국사 종상스님 쪽과 원담스님 등 무당파 의원들을 끌어들여 일승회를 결성했다. 일승회 회원 수는 전체 81명의 종회의원 중 40명 남짓의 과반수를 차지했으나 결속력이 약해 종헌 개정 같은 특별 안건뿐 아니라 일반 안건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게다가 총무원 집행부는 동국학원 재단이사회 이사장 선거나 원로회의 의장선거 등 주요한 선거에서 뜻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일승회 종회의원들이 화엄회로 분가했다. 이후 화엄회는 종회 의원 외에 종책 개발과 실천에 관심 있는 스님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여 종책 자료집 발간과 종책 포럼을 열었다. 또한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 지원과 캄보디아,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의 저소득계층에게 한국불교의 보살심을 전하고, 국제포교 사업을 독자 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로터스 월드와 지구촌공생회 등 교계 국제불교 단체 지원으로 확장했다.
관련사료
종회의원 절반‥현 총무원장 당선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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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23일 (불기 2547년)
정대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장이 봉행되다.
용주사 주지 정락스님, 장의위원회 호상 정휴스님, 동국학원 이사 장윤스님, 상좌 성주ㆍ자승ㆍ성월ㆍ성운 스님 등 100여 명이 참석하다. 장의위원회가 법구에 대한 습골 후 몸에서 나온 사리를 수습해 공개하고, 유골은 정대스님이 평소 주석하던 안양 삼막사 월암당에 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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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29일 (불기 2546년)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집행위원으로 평양에 가다.
방북은 윤이상 음악연구소 초청으로 이뤄지다. 2001년 8ㆍ15 평양축전 때 故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씨가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이하 민추본)에 악기 지원을 요청했고, 2002년 6월 19일 10만 달러 상당의 악기를 보낸 바 있었다. 방북은 조계종 민추본 본부장 정련스님, 총무원 총무부장 원택스님, 민추본 상임집행위원 명진스님, 기획홍보국장 이환래씨와 함께 가다. 6월 29일 남북한 서해 교전으로 긴장이 고조됐으나 민간 교류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편을 타고 평양에 도착해 7월 6일까지 머물면서 조선불교도연맹 박태화 위원장 등 관계자들을 만났다. 민추본은 2000년 창립 이후 남북 불교의 동질성 회복과 화합을 위해 불교적 관점에서의 통일정책 연구, 남북불교 교류, 인도적 지원 등 다양한 통일사업을 펼쳐 조선불교도연맹와 교류 및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 등을 추진했다.
관련사료
서해교전에도 남측인사 50명 입북(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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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불기 2544년)
제12대 중앙종회 재정분과위원장으로 선출되다.
중앙종회 제148회 정기회에서 의장에 지하스님, 수석부의장 청화스님, 차석부의장 명진스님이 선출되고, 상임분과위원회가 구성되다. 총무분과위원장 정우스님, 재정분과위원장 자승스님, 호법분과위원장 정념스님, 사회분과위원장 화범스님, 포교분과위원장 장곡스님, 교육분과위원장 향적스님, 사무처장 원행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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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불기 2544년)
중앙승가대의 김포학사 이전 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
대책위 위원장 영담스님, 위원 학담, 자승, 대원, 지홍, 정인, 무상, 원행, 원택, 성혜, 계성스님으로 구성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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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14일 (불기 2543년)
조계종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총무원장 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하다. 개정 선거법은 중앙종회의원 81명과 전국 교구본사에서 선출된 240명의 선거인 등 321명의 무기명 비밀투표로 총무원장을 선출하도록 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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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12일 (불기 2543년)
중앙종회가 제144회 임시회를 열어 종법에 의거 총무원장 권한대행으로 원택圓澤스님(총무원 총무부장)을 선출하다. 총무원장 선거법을 개정하여 법원 판결에 따라 무효가 된 총무원장 선거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하기로 결의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 등을 새로 선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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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29일 (불기 2542년)
조계종 분규 사태 수습을 위해 원로회의 의장 탄성스님, 중앙종회 의장 법등스님, 정화개혁회의 상임위원 정우스님, 교구본사 주지연합회 법장스님 등이 △중앙종회와 정화개혁회의에서 동수로 참여하는 수습대책위 구성 △정화개혁회의 총무원 청사에서 철수 △전국승려대회 취소 △수습대책위 주관 아래 연말까지 총무원 선거 실시 등 13개항의 타협안에 합의하다. 하지만, 종정 월하스님이 타협안 수락을 거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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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16일 (불기 2542년)
중앙종회가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회의(제?회)를 열어 승려대회 개최를 재결의하고, 대회장에 원로회의 의장인 혜암스님 등 준비위원 인선을 확정하다. 14일 구룡사에 열린 원로회의는 원춴 무효라고 결의하다. 선거관리위원회법, 총무원장 선거법, 총무원장법을 개정하다. 회의에는 종회 재적의원 81명 중 53명이 참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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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10일 (불기 2538년)
전국승려대회가 오후 1시 조계사에서 스님 2,500여 명과 재가불자 1,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봉행되다. 4.10 조계사 승려대회에서 △종정 불신임 △총무원장 해임 및 모든 공직 박탈 △개혁회의 출범 등이 결의되다. 개혁회의 의장에 월하月下스님, 부의장에 설조雪照ㆍ종하스님이 추대되고, 상임위원장에 탄성呑星스님이 선임되다. 경찰이 재투입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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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8월 14일 (불기 2536년)
조계종 제10대 중앙종회 의원이 되다.
스님은 직능대표 간선으로 피선되다. 제10대 중앙종회(의장 종하鍾夏스님)는 24개 교구본사에서 직접선거로 선출된 48명과 간선선출위원회에서 뽑는 직능대표 27명 등 총 75명의 스님들로 구성됐다. 종회 의원은 본사 또는 주요 사찰의 주지를 겸하고 있었고, 간선선출위원회 위원장은 총무원장이었다. 한편, 조계종 종단이 2개의 총무원 체제로 나뉘어 1년여 가까이 벌인 분립 사태는 제10대 종회 구성을 계기로 미봉됐다.
관련사료
총무원'두조각'1년 조계종분규 진정국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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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 16일 (불기 2536년)
조계종단은 90년부터 강북 총무원(의현義玄스님)과 강남 총무원(벽암碧岩스님)으로 나뉘어 갈등을 빚었는데, 정부 중재로 양측이 30인 제도개혁구성위원회 구성을 합의했으나 원로회의(의장 서암西庵스님)의 반대로 무산되다.
원로회의는 방장이나 조실 등 원로 스님들로 구성되는 종단의 최고권위기구다. 원로회의가 정식 발족한 것은 1980년대 초로 과거 장로회의가 발전된 형태였다. 종헌에는 승랍 40세, 연령 65세 이상 종사급 원로 비구로 구성하며 의원은 중앙종회에서 추대하도록 되어 있다. 임기는 10년이고 정원은 10인 이상 21인 이내다. △종헌 개정안과 △총무원장에 대한 인준 및 불신임 결의안 △중요 종책의 조정 등을 원로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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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3월 (불기 2532년)
'대승불교승가회'에 참여하다.
대승불교승가회는 1987년 6월항쟁 당시 불교계의 민주화 열기를 결집시킨 ‘정토구현전국승가회’(1986년 6월 5일 출범)의 맥을 잇는 승가조직이다. 송산松山, 종림宗林, 명진明盡, 자승慈乘, 종태宗跆, 성문性門, 현응玄應, 각신覺腎, 원택圓澤, 설봉雪峰, 주영周暎, 여연如然 스님 주도 아래 30~40대 선승과 학승 등 소장 승려 1백여 명이 참여했고, 초대 회장은 송산스님이 맡았다. 3월 25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소재 개운사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조직은 산하에 이념교육, 제도교육, 인권, 통일, 노동, 공해대책, 민족문화 등 7개 위원회를 구성하고 부설 민족불교연구소를 두었다. 88 서울올림픽 시기에 동국대석림회 등 10여 단체와 함께 ‘민족화합공동올림픽추진본부’를 결성하여 통일운동을 펼치면서 80년대 불교운동의 한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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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오늘] 정토구현전국승가회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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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대중과 국민여러분에게 드리는 글 - 대승불교 승가회 창립 취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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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9월 7일 (불기 2530년)
해인사에서 열린 10.27법난 6주기 전국승려대회에 참가하다.
대회에 모인 전국의 2천여 명의 스님들은 불교자주화와 사회민주화, 자주통일을 주장하다. 9.7 해인사 승려대회 집행위원장은 월주스님, 준비위원장 종하스님, 대회장은 해인사 주지 법전스님이 맡다. 대회는 해인사 부방장 혜암스님의 법어로 시작하여 대회사, 경과보고, 불교탄압 실태보고 순으로 진행되다. 이어 사회민주화와 민족자주권 수호를 위한 불교의 사회 참여를 천명하고, 지선스님의 선언문 낭독, 초우스님의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과 발원문, 결의문을 채택하다. 석림회 성조스님의 결의문 낭독 때 지광스님이 오른쪽 손가락 4개를 잘라 ‘불자여 눈을 떠라’라는 혈서를 쓰다. 이후 스님 1천여 명이 혈서와 피켓을 들고 3.5km 떨어진 가야산 국립공원 입구까지 행진하며 ‘불교재산관리법 철폐’, ‘독재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다. 또한, 자주적 민주적 불교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불교관계 악법 철폐와 10.27법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는 한편, 5.3인천사건으로 구속 수배 중인 불자들의 석방 및 정권의 불교 탄압 등에 강력 항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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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2千(천)명海印寺(해인사)서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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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법난을 규탄하며 불교자주쟁취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자 - 10.27 법난 6주기를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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