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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개의 검색 결과를 찾았습니다.

상세연보313

  • 2009년 9월 26일 (불기 2553년)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제1회 전국청소년불교교리 경시대회 수상자 시상식을 갖다.
    청소년 불교교리 경시대회는 은정불교문화진흥원이 주최하고 불교신문사, 동국대학교, 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가 공동주관하다. 전국의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다종교 사회에서 불교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통해 청소년 불자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신행활동을 독려하기 위한 취지로 열렸으며, 개인상 대상에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과 최대 300만원의 장학금 수여, 단체상은 개인상 최다 배출 단체 등 3곳을 선정해 각각 총무원장상, 포교원장상, 불교신문사장상을 시상했다. 1회 대회 응시인원인 2,677명이고 이중 1,913명이 응시했다. 시상식에서 은정불교문화잔흥원 이사장인 스님은 “이번 대회를 통해 우리 불교와 민족의 미래 희망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으며, 청소년들이 밝고 건강하게 성장한다면 불교와 한민족의 미래가 밝게 빛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오늘 영예의 상을 받게 된 청소년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앞으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친구들에게 전하는 훌륭한 청소년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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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불교의 등불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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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11월 6일 (불기 2552년)
    제14대 중앙종회 전반기 의장 임기를 마치다.
    중앙종회 제179회 정기회가 열리다. 스님은 지난 2년간의 소회를 밝히면서 "종단 발전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응해 성명서와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불교의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었으며 각 상임분과위도 활발하게 활동했다”면서 종회의원 스님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후반기에 더 큰 발전이 있기를 부탁하다. 제14대 중앙종회의 후반기를 이끌 종회의장에 보선스님이 선출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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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장학금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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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8월 27일 (불기 2552년)
    서울광장에서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가 열리다.
    8.27 불교도대회에 1만여 명의 스님을 비롯한 20만 명의 불자들이 모여 종교화합을 염원하다. 전국 사찰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된 범종 타종으로 막이 오른 대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촉구하고, 대통령의 성의 있는 조치가 없을 경우 지역별 범불교도대회를 잇따라 개최할 것을 결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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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7범불교도 대회 현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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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4월 11일 (불기 2552년)
    중국 강서성 남창 우민사에서 열린 조계종조 도의국사 입당 구법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하다.
    조계종조로 받들어지고 있는 도의국사 수법 기념비 제막식에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비롯해 중앙종회의장인 스님 등 한국에서 150여 명과 중국에서 200여 명이 참석하다. 지관스님은 "조계종은 종헌 서문에 종조 도의국사께서 조계의 정통법인을 이어받았다고 법원을 분명히 밝혀놓았다"면서 "이번 기념비 제막은 한국의 조계종과 중국의 임제종이 동근동조이며, 마조선사의 후손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다. 도의국사는 생몰연대가 분명치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784년 당나라로 들어가 37년간 머물며 수행하다 821년(헌덕왕 13년) 귀국한 뒤 강원도 진전사에서 40년간 머물다 입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법기념비가 세워진 우민사는 당시 개원사로 불렸으며 도의국사가 서당 지장(735~814) 선사로부터 법을 받은 곳이다. 조계종이 맥을 잇고 있는 중국 남종선은 육조 혜능(638~713)에서 남악 회양(677~744), 마조 도일(709~788), 서당 지장으로 이어졌다. 기념비는 높이 4m80cm, 폭 2m 크기에 도의국사 행적을 포함해 모두 4천300여 글자를 새겼다. 도의국사의 선법은 이후 염거스님과 보조스님을 거치면서 지금의 조계종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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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종조 도의조사 입당구법 기념비 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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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1월 2일 (불기 2552년)
    무자년 새해 신년사를 발표하다.
    스님은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自他佛二)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울삼아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서로 상생하고 화합하는 아름다운 사회, 크고 작은 인연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소중히 여기고 잘 다듬어서,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하게 되는 좋은 인연들로만 가득 채우기를 기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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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승스님 / “좋은 인연 가득한 사회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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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11월 16일 (불기 2551년)
    대형 산불로 소실된 강원도 양양 낙산사 원통보전 낙성식에 참석하다.
    낙성식에서 총무원장 지관스님은 종단을 대표해 정성을 모아준 국민과 불자들, 공사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다. 종회의장인 스님도 격려사를 통해 "낙산사가 화재 이전의 모습을 되찾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발굴조사를 통해 전통 가람배치를 복원하고 노인전문요양원까지 건립하는 불사가 이뤄졌다"고 감사해 하다. 관음신앙 성지로 알려진 낙산사는 2005년 4월 발생한 산불로 울창했던 소나무숲과 법당인 원통보전, 요사채 등 건물 14채와 보물 479호인 동종이 소실됐다. 화재 이후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의 자문과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원통보전과 종루를 비롯해 심검당, 선열당, 홍예문, 연하당, 취숙헌 등 소실된 전각 대부분을 복원했다. 보물 제1362호인 건칠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될 원통보전은 발굴작업을 통해 확인된 조선 초기의 절터와 같은 형태로 복원됐으며 정면 3칸과 측면 3칸의 정방형 구조에 화강석 기단과 배흘림 기둥, 팔작지붕 등 전통방식이 그대로 적용됐다. 동종 또한 사진과 탁본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해 10월 복원됐으며 신도들의 복원 불사로 제작된 범종과 함께 십자형 팔작지붕의 누각인 종루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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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마 딛고 나툰 관세음보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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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11월 15일 (불기 2551년)
    제2대 종정을 지낸 청담대종사 열반 36주기 추모대법회가 봉행되다.
    서울 도선사 호국참회원에서 봉행된 법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비롯해 300여 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해 청담스님(1902~1971) 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의 정신을 본받아 청정수행 풍토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뜻으로 다짐하다. 스님은 추모사에서 “청담스님은 철저한 수행으로 근현대 불교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수좌이자 정화의 기치를 높이 든 행동가였다”며 “스님의 원력과 헌신 덕분에 한국불교가 불조혜명이 비치는 청정승가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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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담스님 열반 36주기 법회 도선사서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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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9월 30일 (불기 2551년)
    화엄회 스님들과 베트남 호치민시를 방문하여 교육복지시설 건립을 협의하다.
    베트남 현지에 직업기술학교ㆍ고아원ㆍ연수원 등을 갖춘 교육복지시설 건립을 위해 3일간의 일정으로 베트남을 방문하다. 베트남에는 스님을 비롯해 화엄회 운영위원장 성직스님,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이사 성운스님, 종회의원 성월ㆍ정묵ㆍ돈관 ㆍ덕문스님 등이 동행하다. 일행은 방문기간 동안 베트남 정부가 제공하기로 한 토지를 답사하고, 호치민시 불교단체연합회와 고엽제우호협의회, 한국베트남우호협회 소속 관계자들을 만나 현지법인 설립, 부지매입 등의 계획을 논의하다. 화엄회 스님들은 10월 2일 호치민외국어정보대학교 강당에서 고엽제피해자, 장애아동, 고아, 대학생 등 100명에게 1만 달러의 장학금을 전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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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회, 베트남에 교육복지시설 건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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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9월 27일 (불기 2551년)
    신정아 사건과 관련한 최근 몇몇 언론의 음해성 보도행태와 유혈사태로 번지고 있는 미얀마 상황에 대해 입장이 담긴 중앙종회 성명서가 발표되다. 미얀마 사태에 대해 “현재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님들이 중심이 된 민주 평화 운동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밝히고,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부처님의 땅 미얀마가 군부 정권의 탐욕으로 더 이상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 지도자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하다. 또한,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가짜학위 사건 관련해 "이번 사건이 종립 동국대학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 대하여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아울러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일부 신문과 방송이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나 마치 불교계가 부정의 온상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는 행태에 대하여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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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종 중앙종회 “선정적 음해성 보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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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3월 26일 (불기 2551년)
    중앙종회 제173회 임시회가 열리다.
    1998년 해종행위 징계자(성문ㆍ현소ㆍ원학ㆍ정우ㆍ월탄ㆍ남현스님)에 대한 사면 동의안을 만장일치 통과시키다. 반면 '멸빈자 사면 종헌 개정안'은 찬성 50표, 반대 18표, 기권 2표로 2표가 모자라 부결되다. 종단은 1994년 이후 분규로 승적을 박탈당한 멸빈자 구제를 위해 2003년 4월, 2004년 3월 두 차례 종헌 개정을 시도했으나 모두 부결된 바 있었다. 한편, 종회에서 불국사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위탁한 석가탑 내 발견유물 일괄(국보 제126호) 반환을 촉구하는 성명서와 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가 있는 충남 내포문화권의 가야산 개발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채택하다.
  • 2006년 11월 13일 (불기 2550년)
    제14대 중앙종회 전반기 의장에 당선되다.
    중앙종회 제172회 정기회에서 총 76명 가운데 49표를 획득, 전체 종회의원의 64.4%의 지지를 얻어 종회의장으로 선출됐다. 스님은 선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중앙종회가 될 수 있도록 종책모임간의 의견조율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며 ''화합종회''를 표방하다. 종회 부의장은 장주스님(수석)과 동광스님(차석)이 각각 만장일치로 결정되다. 또 전반기 종회사무처장은 주경스님이 임명되다. 상임위원장은 총무분과위원장 상운스님, 교육분과위원장 장적스님, 포교분과위원장 지원스님, 사회분과위원장 수현스님, 재정분과위원장 향적스님, 호법분과위원장 도완스님, 법제분과위원장 장윤스님이다. 스님은 종회 의장을 맡아 신뢰와 소통의 리더십으로 종회 내 각 종책모임의 이견과 총무원과의 종무를 조정하는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종회 본연의 기능인 입법 활동과 집행부에 대한 감사와 견제 활동을 활발히 지원하면서 위상을 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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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4대 중앙종회 의장 자승스님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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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제14대 중앙종회 전반기 의장 자승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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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2월 13일 (불기 2550년)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 고문을 맡다.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이하 실록 환수위)는 1913년 데라우치 조선 총독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환수하기 위해 조계종 월정사와 봉선사 주축으로 발족됐다. 오대산 사고본은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도쿄대 도서관에 중종대왕실록 29책, 성종실록 9책 등 모두 46책이 소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다. 이에 월정사에서 조선왕조가 오대산 사고의 관리책임자로 월정사 주지를 임명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1970년 11월 제16차 총회에서 채택된 유네스코의 '문화재의 불법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 등을 들어 반환의 적법성을 주장하다. 실록 환수위 공동의장은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과 봉선사 주지 철안스님이 맡고, 환수위원으로 김삼웅 독립기념관장과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배현숙 계명문화대 교수,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 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실행위원장으로 문만기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을 위촉하다. 실록 환수위는 도쿄대와 협상을 벌인 뒤 결렬 시 도쿄법원에 일본 총리와 도쿄대 총장을 상대로 조정신청을 낼 계획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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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반출 조선왕조실록 환수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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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년 12월 24일 (불기 2543년)
    연주암 주지 소임을 마치다.
  • 1999년 11월 14일 (불기 2543년)
    조계종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총무원장 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하다. 개정 선거법은 중앙종회의원 81명과 전국 교구본사에서 선출된 240명의 선거인 등 321명의 무기명 비밀투표로 총무원장을 선출하도록 정하다.
  • 1999년 10월 1일 (불기 2543년)
    법원(서울지법 민사합의42부, 재판장 이수형 부장판사)이 정화개혁회의 측 정영스님이 총무원장 고산스님을 상대로 낸 총무원장직 부존재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하다. 판결문은 98년 12월 중앙종회가 종법상 공고절차를 거치지 않고 종회의원 81명 중 42명만을 모은 채 기존 선거절차를 무효화하는 내용의 총무원장 선거법을 개정한 만큼 개정 선거법은 무효라고 하다. 전 종정 월하스님 등이 낸 중앙종회 자격상실확인 청구소송에서는 원로회의의 종회 해산 명령은 재적의원 미달 상태에서 이뤄진 만큼 무효라며 원고 패소 판결하다.
  • 1998년 11월 30일 (불기 2542년)
    종헌종법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대회장 탄성스님)가 오후 2시30분 조계사 앞에서 스님 1,200여 명과 신도 등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다. 대회에 참석한 스님들은 월하 종정 불신임과 정화개혁회의의 즉각 해산 및 총무원 청사에서 철수, 총무원장 선거 실시 등을 결의하다. 대회를 마친 스님과 신도들이 총무원 청사 진입을 시도, 이를 저지하는 정화개혁회의 측 스님들과 폭력 사태가 벌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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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종 폭력 밤샘 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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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년 11월 27일 (불기 2542년)
    교구본사 주지연합회(회장 법장法長스님)가 중앙종회와 정화개혁회의 대치 상황 해결을 위한 중재에 나서다.
  • 1998년 11월 14일 (불기 2542년)
    원로회의 스님 7명이 서울 양재동 구룡사에서 종정 월하스님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중앙종회 해산과 월주 총무원장의 해임을 결의하다. 또 혜암 원로회의 의장을 제명하고, 새 의장에 벽암 부의장을 선출하다. 이날 원로회의는 총원 22명 중 7명이 참석, 8명의 위임장을 받다. 혜암스님은 원로회의 소집을 거부하여 불참했고,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아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다. 중앙종회 의장 법등스님도 원로회의법에 위배된다는 성명을 발표하다.
  • 1998년 10월 (불기 2542년)
    제29대 총무원장 선거에 월주月珠스님 3선 출마 여부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다. 월주스님은 80년 6개월여 간 총무원장(제17대)으로 재임한 바 있어 출마의사를 밝힌 다른 스님들이 "월주스님은 총무원장 3선에 해당하여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는 종헌에 위배된다"며 불출마를 종용하다. 반면, 월주스님 측은 "당시 신군부에 의해 강제 사퇴당한 것으로 94년 제정 공포된 종헌을 소급 적용할 수 없다"고 반발하다. 총무원장은 94년 종단 개혁을 통해 제정 공포된 종헌에 따라 전국 24개 교구에서 뽑은 선거인단 240명과 중앙종회의원 81명이 선출하는데, 교구본사 주지는 교구종회의원 2명을 포함해 선거인단 12명을 결정하도록 되어 있어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해 8개 교구에서 임기 만료로 치러진 주지 직접 선거는 총무원장 선거 대리전 양상을 띠었다.
  • 1996년 4월 (불기 2540년)
    중앙종회가 제120회 정기회에서 전남 장성 백양사에 조계종 5번째 총림인 고불古佛총림을 설치키로 결의하고 강원 율원 선원 염불원을 갖추도록 결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