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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연보406

  • 2007년 10월 19일 (불기 2551년)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대법회'를 봉행하다.
    종정 법전스님과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비롯한 사부대중 1만여 명이 참가해 '봉암사鳳巖寺 결사' 정신을 되살려 어수선해진 종단 분위기를 쇄신하자는 참회와 자정의 목소리를 내다. 봉암사 결사는 왜색불교의 폐습이 남아 있던 1947년 청담, 성철, 자운 스님 등이 "부처님 법대로 살자"며 펼친 불교계 혁신 운동이다. 이날 법회에는 봉암사 결사 당시 수행종풍을 세우기 위해 마련한 18개 항의 '공주규약共住規約'과 선언문이 낭독되고, 참회문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실천하지 못해 세상의 빛이 되지 못했다"면서 "지금의 위기와 고난이 졸음을 깨우는 죽비 소리임을 알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다"고 밝히다. 이어 봉암사 결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3대 실천지침으로 △일체의 명리를 버리고 본분에 충실하며 △수행을 생활화ㆍ사회화하고 △국민 모두 주어진 직분에 충실할 것을 제시하다. 참가자들이 참회를 위해 일제히 좌선 입정의 시간을 가진데 이어 종정 법전스님은 법어를 통해 "여기 모인 대중은 역순逆順을 자제하는 기틀로 곧은 것과 굽은 것을 모두 놓아버리면, 시방十方의 종지宗旨가 한 곳으로 모일 것이요, 정正과 사邪의 시비是非가 원융圓融을 이룰 것"이라며 출가수행자의 본분을 지켜 세상의 시비에 초연할 것을 당부하다. 봉암사는 백두대간의 허리인 희양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곳에 자리잡은 조계종 종립특별선원으로 선승들의 수행 환경을 지키기 위해 25년간 산문을 폐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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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新결사 조직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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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10월 13일 (불기 2551년)
    북한 금강산 신계사 낙성법회에 참석하다.
    낙성식에는 남측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 포교원장 혜총스님, 중앙종회의장 자승스님, 중앙신도회 김의정 회장,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스님, 유홍준 문화재청장, 현대아산 윤만준 사장, 북측 유영선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장 등 남북 불교도 400여 명이 참석하다. 전날(12일)에는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증명법사로 ‘금강산 신계사 부처님 봉안 점안식’이 봉행되다. 신계사神溪寺는 신라 법흥왕 때(519년) 보운스님이 창건한 고찰이다. 장안사, 유점사, 표훈사와 더불어 금강산 4대 명찰로 꼽힌다. 임진왜란 때 서산ㆍ사명대사가 승군을 일으켜 지휘한 곳이고, 근대에 와서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스님이 출가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됐는데, 남북 공동으로 발굴조사 등을 거쳐 2004년부터 복원불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 11월 대웅보전 낙성식을 가진 데 이어 만세루, 산신각, 칠성각, 종각, 나한전, 극락전, 어실각, 요사채 등을 차례로 복원했고, 2007년 부처님 봉안과 단청작업 등 주변 정리를 마쳐 4년여에 걸친 복원 불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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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 신계사 천년고찰 면모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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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11월 13일 (불기 2550년)
    제14대 중앙종회 전반기 의장에 당선되다.
    중앙종회 제172회 정기회에서 총 76명 가운데 49표를 획득, 전체 종회의원의 64.4%의 지지를 얻어 종회의장으로 선출됐다. 스님은 선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중앙종회가 될 수 있도록 종책모임간의 의견조율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며 ''화합종회''를 표방하다. 종회 부의장은 장주스님(수석)과 동광스님(차석)이 각각 만장일치로 결정되다. 또 전반기 종회사무처장은 주경스님이 임명되다. 상임위원장은 총무분과위원장 상운스님, 교육분과위원장 장적스님, 포교분과위원장 지원스님, 사회분과위원장 수현스님, 재정분과위원장 향적스님, 호법분과위원장 도완스님, 법제분과위원장 장윤스님이다. 스님은 종회 의장을 맡아 신뢰와 소통의 리더십으로 종회 내 각 종책모임의 이견과 총무원과의 종무를 조정하는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종회 본연의 기능인 입법 활동과 집행부에 대한 감사와 견제 활동을 활발히 지원하면서 위상을 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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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4대 중앙종회 의장 자승스님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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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사료
    인터뷰/ 제14대 중앙종회 전반기 의장 자승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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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10월 (불기 2550년)
    총무원 총무부장을 사임하다.
  • 2006년 7월 11일 (불기 2550년)
    총무원 총무부 주최로 ‘종교변화 분석과 종단의 나아갈 방향’ 주제의 중앙종무기관 종무원 세미나가 열리다.
  • 2005년 12월 9일 (불기 2549년)
    총무원 총무부가 종단 정체성 확립과 승가위의 제고 위한 가사 통일 방침을 교구본사주지회의에 보고하다.
  • 2005년 11월 16일 (불기 2549년)
    제32대 총무원(총무원장 지관스님) 총무부장에 임명되다.
    스님은 임명장 수여 후 기자들과 만나 "종단화합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동국대 이사와 통도사 방장 문제를 원만하게 풀겠다"고 밝히다.
    제32대 총무원 집행부로 재무부장 정만正滿스님, 사회부장 지원志源스님, 호법부장 서리에 도진道眞스님, 사서실장 심경스님이 각각 임명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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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대 ㆍ 통도사 문제 풀어 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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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10월 31일 (불기 2549년)
    조계종 제32대 총무원장으로 지관스님이 취임하다.
  • 2005년 10월 5일 (불기 2549년)
    제32대 총무원장 추대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다.
    추대 상임위가 차기 총무원장 후보로 지관, 설정, 도영 스님으로 압축하고, 이중 1명을 최종 후보로 추대하기로 하다. 추대 상임위 위원장은 동화사 주지 지성스님, 부위원장은 스님과 장윤스님이 선출되다.
  • 2005년 9월 11일 (불기 2549년)
    총무원장 권한대행에 현고스님이 임명되다.
  • 2004년 10월 21일 (불기 2548년)
    중앙종회의원 스님들 중심으로 한 승가모임 ‘화엄회’에 참여해 운영위원장을 맡다.
    화엄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타워호텔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활동에 들어가다. 창립선언문에서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바탕으로 원융종단의 화합 승가를 구현하기 위해 결사의 마음으로 모였다”며 “갈등과 반목을 없애고 생산적이고 합리적이며 평등한 대중공의를 통해 종단의 발전과 화합승가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히다. 이를 위해 △중앙과 교구의 협력체계 강화 △다양한 종단 재정 확충 △공정한 인사제도 마련 △불교 인재 양성 △승려노후복지 실현 △국제화 인터넷 시대 포교 △불교교세의 지역별 연령별 불균형 극복 △종무행정 평가시스템 구현 △종도 여론 수렴 △사회문제의 불교적 해결 등 10대 사업과제를 제시하다. 고문으로는 용주사 주지 정락스님, 법주사 주지 도공스님, 불국사 주지 종상스님, 화엄사 주지 명섭스님, 선운사 주지 범여스님, 관음사 주지 용주스님, 회장은 장주스님, 수석부회장 인행스님, 운영위원장 자승스님, 운영위위원회 간사 광조스님, 총무간사 도완스님, 대변인 정안스님이 맡다. 당시 중앙종회 종파로는 금강회와 보림회, 실천승가회, 직지사단의 연합체인 원융회, 10여 명의 무당파 의원들이 있었다.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당선에 일조한 실천승가회와 직지사단 연합체인 원융회, 구여권 종회 의원들, 불국사 종상스님 쪽과 원담스님 등 무당파 의원들을 끌어들여 일승회를 결성했다. 일승회 회원 수는 전체 81명의 종회의원 중 40명 남짓의 과반수를 차지했으나 결속력이 약해 종헌 개정 같은 특별 안건뿐 아니라 일반 안건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게다가 총무원 집행부는 동국학원 재단이사회 이사장 선거나 원로회의 의장선거 등 주요한 선거에서 뜻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일승회 종회의원들이 화엄회로 분가했다. 이후 화엄회는 종회 의원 외에 종책 개발과 실천에 관심 있는 스님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여 종책 자료집 발간과 종책 포럼을 열었다. 또한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 지원과 캄보디아,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의 저소득계층에게 한국불교의 보살심을 전하고, 국제포교 사업을 독자 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로터스 월드와 지구촌공생회 등 교계 국제불교 단체 지원으로 확장했다.
    관련사료
    종회의원 절반‥현 총무원장 당선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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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2월 24일 (불기 2547년)
    조계종 제31대 총무원장에 법장스님이 선출되다.
  • 2003년 1월 15일 (불기 2547년)
    정대스님이 총무원장직을 내려놓다.
    총무원장 권한대행에 선용스님이 임명되다.
  • 2002년 6월 29일 (불기 2546년)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집행위원으로 평양에 가다.
    방북은 윤이상 음악연구소 초청으로 이뤄지다. 2001년 8ㆍ15 평양축전 때 故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씨가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이하 민추본)에 악기 지원을 요청했고, 2002년 6월 19일 10만 달러 상당의 악기를 보낸 바 있었다. 방북은 조계종 민추본 본부장 정련스님, 총무원 총무부장 원택스님, 민추본 상임집행위원 명진스님, 기획홍보국장 이환래씨와 함께 가다. 6월 29일 남북한 서해 교전으로 긴장이 고조됐으나 민간 교류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편을 타고 평양에 도착해 7월 6일까지 머물면서 조선불교도연맹 박태화 위원장 등 관계자들을 만났다. 민추본은 2000년 창립 이후 남북 불교의 동질성 회복과 화합을 위해 불교적 관점에서의 통일정책 연구, 남북불교 교류, 인도적 지원 등 다양한 통일사업을 펼쳐 조선불교도연맹와 교류 및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 등을 추진했다.
    관련사료
    서해교전에도 남측인사 50명 입북(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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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2월 17일 (불기 2544년)
    제12대 중앙종회 의원으로 피선되다.
    정대스님의 총무원장 취임으로 공석이 된 제2교구 직선 중앙종회의원에 단독 입후보해 무투표 당선되다.
  • 1999년 11월 25일 (불기 2543년)
    제30대 총무원(총무원장 정대스님) 재무부장에 재임명되다.
    총무원장 정대스님은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종단 화합을 강조하고, 애종심을 갖고 종무행정에 임해 줄 것을 당부하다. 총무원 기획실장에 지원스님(송광사 주지) 임명.
  • 1999년 11월 23일 (불기 2543년)
    정대스님이 오전 9시30분 조계사 대웅전에서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 중앙종회사무처 조계사 종무원 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무원장 취임 고불식을 갖다.
    제30대 총무원 집행부 첫 인사로 총무부장 원택스님, 문화부장 일철스님, 사회부장 양산스님, 호법부장 종지스님 등 4명의 부장 스님을 유임 발령하다.
  • 1999년 11월 15일 (불기 2543년)
    조계종 제30대 총무원장으로 정대正大스님이 당선되다.
    정대스님이 선거인단 재적과반수인 166표를 얻어 실천승가회를 이끌어온 지선知詵스님과 32표 차가 나다.
  • 1999년 11월 14일 (불기 2543년)
    조계종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총무원장 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하다. 개정 선거법은 중앙종회의원 81명과 전국 교구본사에서 선출된 240명의 선거인 등 321명의 무기명 비밀투표로 총무원장을 선출하도록 정하다.
  • 1999년 11월 5일 (불기 2543년)
    총무원에 재무부장 사표를 제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