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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개의 검색 결과를 찾았습니다.

상세연보44

  • 1998년 2월 (불기 2542년)
    연주암의 환경친화적 불사와 무료 점심 공양이 회자되다.
    스님이 주지에 부임한 이래 공사가 중단돼 있던 선불전을 천수관음전으로 바꿔 불사를 회향, 지하에는 현대식 주방시설과 식탁을 갖췄다. 공양간 한켠에 기도객들이 묵어갈 수 있는 방사를 지었고, 대중스님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요사채도 보수했다. 연주암 상징인 연주대에 기와불사와 종불사도 마쳤고, 효령대군 영정은 종각 위쪽에 효령각을 신축해 모셨다. 고지대라 겪는 식수난을 3년여에 걸친 시추 노력 끝에 암반수를 찾아 해결했고, 오폐수 및 화장실 자체 정화 시설을 만들었다. 또한, 사찰 토지를 무단 사용중이던 기상대 관측소를 철거시켰고, 군부대로부터 헬기장 유류고 등 1,500평을 반환받았다. 연주암 복원을 위해 관악사지 발굴사업을 추진하여 1250나한 조성불사와 함께 나한기도도량으로 가꿔나갔다.
    관련사료
    연주암이 달라졌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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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사료
    주지 자승스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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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6년 1월 23일 (불기 2530년)
    성남 망경암望京庵 주지를 맡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553-1) 영장산에 있는 망경암에선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보여 서울을 바라보는 암자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 스님은 망경암에 그해 8월 20일까지 있었다.

    망경암은 고려 말과 조선 초 임금들이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빌었던 곳이다. 조선조 세종의 7째 아들인 평원대군과 손자 제안대군이 단을 설치하고 분향하여 충효를 다짐하던 곳으로 전해진다. 칠성신앙과 관련된 도량으로 암벽을 깎아내고 이 안에 부조로 불상을 새겨 넣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마애여래좌상 주변에는 광무 7년(1897년) 이규승이 관음상을 새겼다는 기록이 있다. 마당 한쪽에 부처님이 내려주신 복된 감로수가 마르지 않는 복우물이 조성되어 있다. 성남시 복정동 지명은 이 우물에서 비롯됐다. 사찰 전각들로는 대웅전, 삼성각, 미륵전이 있는데, 모두 근래 조성된 것들이다. 거대한 미륵대불과 5층석탑도 있다. 망경암 자연암벽에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모셨다.
  • 1984년 5월 25일 (불기 2528년)
    수원포교당 주지를 맡다.
    수원포교당은 현재 수원사水原寺로 개명했으나 당시는 화광사華光寺로 불렸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92번지에 위치해 있다. 스님은 수원포교당 주지를 1986년 1월 23일까지 맡았다.

    수원포교당은 1920년 4월 8일 당시 용주사 주지 대련스님이 일반 대중들에게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법당과 관음전, 요사를 지은 게 시작이었다. 사찰 창건 이전 이곳에는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까지 수령 300년 정도의 느티나무가 있다. 당시 지은 법당이 현재의 극락대원전이며, 관음전이 현재의 정토수행관이다. 1927년 손계조 포교사가 옥돌관음상을 봉안했고, 1957년 화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4년 삼존불 후불탱화, 칠성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가 극락대원전에 봉안되었고, 1973년 정하스님이 석조아미타여래상을 조성하면서 법당을 중수, 단청했다. 1980년 법전스님이 삼존불을 개금했으며, 1981년 정락스님, 1984년 자승스님 노력으로 불교 포교의 중심 역할을 하는 전국 3대 포교당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관련사료
    〈34〉수원 수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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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사료
    대한불교조계종 수원사 사이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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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2년 7월 14일 (불기 2526년)
    이천 영월암映月庵 주지의 소임을 맡다.
    영월암은 경기도 이천시 설봉산 중턱 관고동 438번지에 위치한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스님은 영월암 주지를 그해 12월 16일까지 맡았다.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당시 절 이름은 북악사北嶽寺라 했었고, 조선 영조 50년(1774) 영월 낭규대사가 중창하고 영월암이라 고쳐 불렀다. 1911년 보은스님이 중건했고, 1941년 명칠스님이 대웅전을 중창했다. 현존하는 당우는 대웅전과 동별당ㆍ요사채 3동이다. 대웅전 앞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삼층석탑이 있고, 신라 때 것으로 추정되는 뛰어난 조각솜씨의 석조광배와 연화대좌(향토유적 제3호)가 있다. 연화대좌 위에는 근래 조성한 석조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대웅전 뒤편 바위에 조성된 보물 제822호인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절 입구에는 수령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