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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23일 (불기 2550년)
삼성문화재단이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현등사 사리 및 사리구를 되찾기 위해 범종단 추진위원회가 발족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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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13일 (불기 2550년)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 고문을 맡다.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이하 실록 환수위)는 1913년 데라우치 조선 총독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환수하기 위해 조계종 월정사와 봉선사 주축으로 발족됐다. 오대산 사고본은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도쿄대 도서관에 중종대왕실록 29책, 성종실록 9책 등 모두 46책이 소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다. 이에 월정사에서 조선왕조가 오대산 사고의 관리책임자로 월정사 주지를 임명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1970년 11월 제16차 총회에서 채택된 유네스코의 '문화재의 불법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 등을 들어 반환의 적법성을 주장하다. 실록 환수위 공동의장은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과 봉선사 주지 철안스님이 맡고, 환수위원으로 김삼웅 독립기념관장과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배현숙 계명문화대 교수,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 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실행위원장으로 문만기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을 위촉하다. 실록 환수위는 도쿄대와 협상을 벌인 뒤 결렬 시 도쿄법원에 일본 총리와 도쿄대 총장을 상대로 조정신청을 낼 계획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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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5일 (불기 2549년)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제4회 장학금 수여식’을 갖고, 신용불량자에게 희망격려금을 지급하다.
제4회 은정 장학금은 대학생 28명, 고등학생 19명, 초중생 12명에게 1억 2,015만 원을 수여하고, 생활격려금으로 소년소녀가장 6명, 독거노인 4명, 신용회복자 20명에게 3,300만 원을 지원하다. 학술연구지원금은 가산불교문화연구원에 1,000만 원, 단체 지원금은 대학생불교연합회, 불교인권위원회, 보조사상연구원에 각 300만 원, 동국대 농구부에 600만 원 등 각각 지원해 모두 1억 7,950만 원이었다.
관련사료
은정불교진흥원, 1억7천만원 장학금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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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0일 (불기 2548년)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제3회 은정장학금 수여식’을 갖다.
서울 타워호텔 만복림에서 열린 ‘제3회 은정장학, 학술연구지원, 생활격려금 증서수여식’에서 대학생 등 40명에게 장학금 8,400만 원과 소년소녀가장 11명 및 독거노인 3명에게 생활격려금으로 2,400만 원을 지원하고, 학술연구지원금으로 가산불교문화연구원에 2,000만 원, 대학생불교연합회와 불교인권위원회에 단체지원금 1,100만 원 등 모두 1억3900만원을 지급하다. 이사장인 스님은 2004년 10월 효령대상 부상으로 받은 1,900만 원 전액을 지원금으로 기부하다.
관련사료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장학금 1억39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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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6일 (불기 2548년)
제7회 효령대상을 수상하다.
효령대상은 조선 태종 둘째왕자 효령대군의 충효사상과 사회봉사 정신을 기리는 상으로 오후 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상식이 열렸다.
관련사료
자승스님, 효령대상 사회봉사상 수상자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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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27일 (불기 2548년)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하다.
은정불교문화진흥원은 정대스님이 모친 故 최은수에게서 상속받은 유산을 출연해 2002년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불자 인재 양성과 이웃과의 공생공존을 목표로 소년소녀가장돕기, 장학사업, 학술지원사업 등을 벌여 은정학술상 시상, 전국청소년 불교교리경시대회, 나란다축제 개최와 은정학술총서를 발행하고 있다. 스님은 이사장을 맡은 이래 불교학자 지원을 통한 불교학 발전이란 인재불사에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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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23일 (불기 2543년)
정대스님이 오전 9시30분 조계사 대웅전에서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 중앙종회사무처 조계사 종무원 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무원장 취임 고불식을 갖다.
제30대 총무원 집행부 첫 인사로 총무부장 원택스님, 문화부장 일철스님, 사회부장 양산스님, 호법부장 종지스님 등 4명의 부장 스님을 유임 발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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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 20일 (불기 2543년)
제29대 총무원(총무원장 고산스님) 재무부장에 임명되다.
제29대 총무원 출범한지 8개월여만에 집행부 부분 개편 인사가 단행되다. 스님이 재무부장에 선임되고, 총무부장 원택스님과 기획실장 만성스님, 호법부장 종고스님은 유임, 문화부장 일철스님, 사회부장 양산스님, 사서실장 성조스님이 전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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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9일 (불기 2541년)
'민족문화 수호와 전법을 위한 조계종 지도자회의'가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교구본사 주지, 중앙종회의원, 수말사 주지 등 300여 스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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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1월 22일 (불기 2540년)
'환경보존과 민족문화 수호를 위한 전국 본말사 주지 결의대회'가 오후 2시 조계사에서 열리다. 종단 산하 전국 본말사 주지스님 3천여 명과 신도 500여 명이 참석하다. 결의문을 통해 "가야산ㆍ모악산 등 전국의 사찰주변 자연환경이 행정관료와 기업가들에 의해 훼손되는 사태를 주목해왔다"며, 사찰 주변의 무분별한 개발 중단과 불교계에 대한 외부개입 배격을 요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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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6월 22일 (불기 2540년)
중앙종회가 제121회 임시회에서 한약분쟁 관련 결의안을 통해 국민생명 위협하는 파행적인 한약조제 시험을 재조정하라며, 정부가 민족문화전통의 수호원칙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정책을 집행할 것을 촉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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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 22일 (불기 2539년)
중앙종회가 제118회 임시회에서 고속철도 경주도심노선은 문화재 훼손 우려가 크므로 전면 백지화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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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9월 27일 (불기 2538년)
개혁회의가 중앙종회의원과 교구종회에서 선출하는 선거인단에 의한 총무원장 선출 및 본사주지 중앙종회 의원 겸직 금지 등을 담은 종헌 개혁안을 확정짓다. 개혁회의는 △정법종단의 구현 △불교자주화 실현 △종단운영의 민주화 △청정교단의 구현 △불교의 사회역할 확대 등 5대 지표를 설정하고 종단 개혁에 나서 총무원장 선거권을 320여 명으로 확대하고, 교구본사 주지, 중앙종회의원, 교구종회의원 등 종단의 주요 소임자를 직접 선거로 선출케 했다. 또, 종무행정 체계를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으로 분리해 각각의 역할을 전문성에 근거해 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총무원의 역할을 보완하고 독주를 견제할 수 있도록 중앙종회의 권한을 확대시켰다. 종회의원은 종단의 다른 주요 소임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대신 종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 대해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징계를 할 경우 종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그 지위를 보장했다. 사법기능인 호계원의 소관업무도 확대해 선거 관련 심판 등을 관장하게 하고, 특히 종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종단 안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종단 재정의 공개운영을 원칙으로 함을 종헌에 명문화하고, 사설사암의 종단 등록을 의무화하면서도 운영의 독립성을 인정토록 했다. 사찰이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선 감사기관의 조사를 거쳐 총무원의 허가를 얻도록 하고, 총무원이 종단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선 중앙종회의 동의를 얻게 했다. 참선수행 도량인 선원을 기초선원과 전문선원으로 구분하고, 기초선원 이수자는 종단의 기본교육 이수자와 동등 자격을 부여해 전문선원에 입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단일 계단을 운영하는 동시에 계를 받기 위해선 종단에서 정한 의무교육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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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10일 (불기 2538년)
관악산 연주암戀主庵 주지에 임명되다.
연주암은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 연주봉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의 말사이다. 통일신라 677년(문무왕 17)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관악사冠岳寺라 하였다. 조선 개국 1392년(태조 1)에는 이성계가 의상대를 중건하고 그의 처남인 강득룡과 서견ㆍ남을 등이 이곳에서 송도를 바라보며 고려왕조를 연모하면서 통곡하였기 때문에 연주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1396년에는 연주암을 신축하였고, 1411년(태종 11)에는 효령대군이 이건하여 중건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868년(고종 5)에 명성황후의 하사금으로 극락전과 용화전을 중수하였고, 1883년에 대방을 중수하고 기와불사를 하였다. 1886년에는 행문幸文이 법당과 나한전을 중수하였고, 1918년에는 경산慶山이, 1929년에는 재운在芸이, 1936년에는 교훈敎訓이 중수하였다. 1975년 송원松園이 대웅전을 신축하였고, 1979년에 연주대와 삼성각을 중수하였으며, 1981년 요사 개축, 1996년 관음전 개축, 2003년 영산전 중수, 2005년 연주대를 대수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관음전, 영산전, 연주대(응진전), 삼성각 등을 비롯하여 효령대군의 진영을 봉안한 효령각이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시도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은 고려 후기 때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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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3월 (불기 2532년)
'대승불교승가회'에 참여하다.
대승불교승가회는 1987년 6월항쟁 당시 불교계의 민주화 열기를 결집시킨 ‘정토구현전국승가회’(1986년 6월 5일 출범)의 맥을 잇는 승가조직이다. 송산松山, 종림宗林, 명진明盡, 자승慈乘, 종태宗跆, 성문性門, 현응玄應, 각신覺腎, 원택圓澤, 설봉雪峰, 주영周暎, 여연如然 스님 주도 아래 30~40대 선승과 학승 등 소장 승려 1백여 명이 참여했고, 초대 회장은 송산스님이 맡았다. 3월 25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소재 개운사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조직은 산하에 이념교육, 제도교육, 인권, 통일, 노동, 공해대책, 민족문화 등 7개 위원회를 구성하고 부설 민족불교연구소를 두었다. 88 서울올림픽 시기에 동국대석림회 등 10여 단체와 함께 ‘민족화합공동올림픽추진본부’를 결성하여 통일운동을 펼치면서 80년대 불교운동의 한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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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오늘] 정토구현전국승가회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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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대중과 국민여러분에게 드리는 글 - 대승불교 승가회 창립 취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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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 23일 (불기 2530년)
성남 망경암望京庵 주지를 맡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553-1) 영장산에 있는 망경암에선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보여 서울을 바라보는 암자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 스님은 망경암에 그해 8월 20일까지 있었다.
망경암은 고려 말과 조선 초 임금들이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빌었던 곳이다. 조선조 세종의 7째 아들인 평원대군과 손자 제안대군이 단을 설치하고 분향하여 충효를 다짐하던 곳으로 전해진다. 칠성신앙과 관련된 도량으로 암벽을 깎아내고 이 안에 부조로 불상을 새겨 넣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마애여래좌상 주변에는 광무 7년(1897년) 이규승이 관음상을 새겼다는 기록이 있다. 마당 한쪽에 부처님이 내려주신 복된 감로수가 마르지 않는 복우물이 조성되어 있다. 성남시 복정동 지명은 이 우물에서 비롯됐다. 사찰 전각들로는 대웅전, 삼성각, 미륵전이 있는데, 모두 근래 조성된 것들이다. 거대한 미륵대불과 5층석탑도 있다. 망경암 자연암벽에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