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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3일 (불기 2551년)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열린 신라시대 김교각 스님 입상 봉안 법회에 참석하다.
‘김교각 지장왕보살입상 한국봉안 한중법회봉행위’(집행위원장 영담스님)가 중국종교문화교류협회 및 중국불교협회(회장 일성스님) 공동으로 교각스님을 국내에 봉안하는 법회를 봉행하다. 봉안법회는 한중수교 15주년을 맞아 중국정부(종교사무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개최되다. 김교각(696~794)스님은 신라 왕족 출신으로 성덕왕 19년(720년) 당나라로 건너가 구화산에서 75년간 수행하여 지장보살로 추앙받았다.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며 중생제도에 나섰던 보살. 교각스님 입적 뒤 3년이 되는 해에 유해가 담긴 항아리를 열어보니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어 신도들이 등신불로 만들어 육신보전이라 불리는 탑에 봉안했는데, 봉은사에서 봉안법회를 가진 입상은 등신불이 아니라 따로 중국 정부가 제작한 3m 높이의 지장보살상이다. 교각스님 입상은 중국 구화산 육신보전에서 점안법회를 봉행한 뒤 중국 종교사무국 예샤오원葉小文 국장이 한국으로 모셔왔고, 봉은사 법회 후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봉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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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9일 (불기 2551년)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대법회'를 봉행하다.
종정 법전스님과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비롯한 사부대중 1만여 명이 참가해 '봉암사鳳巖寺 결사' 정신을 되살려 어수선해진 종단 분위기를 쇄신하자는 참회와 자정의 목소리를 내다. 봉암사 결사는 왜색불교의 폐습이 남아 있던 1947년 청담, 성철, 자운 스님 등이 "부처님 법대로 살자"며 펼친 불교계 혁신 운동이다. 이날 법회에는 봉암사 결사 당시 수행종풍을 세우기 위해 마련한 18개 항의 '공주규약共住規約'과 선언문이 낭독되고, 참회문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실천하지 못해 세상의 빛이 되지 못했다"면서 "지금의 위기와 고난이 졸음을 깨우는 죽비 소리임을 알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다"고 밝히다. 이어 봉암사 결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3대 실천지침으로 △일체의 명리를 버리고 본분에 충실하며 △수행을 생활화ㆍ사회화하고 △국민 모두 주어진 직분에 충실할 것을 제시하다. 참가자들이 참회를 위해 일제히 좌선 입정의 시간을 가진데 이어 종정 법전스님은 법어를 통해 "여기 모인 대중은 역순逆順을 자제하는 기틀로 곧은 것과 굽은 것을 모두 놓아버리면, 시방十方의 종지宗旨가 한 곳으로 모일 것이요, 정正과 사邪의 시비是非가 원융圓融을 이룰 것"이라며 출가수행자의 본분을 지켜 세상의 시비에 초연할 것을 당부하다. 봉암사는 백두대간의 허리인 희양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곳에 자리잡은 조계종 종립특별선원으로 선승들의 수행 환경을 지키기 위해 25년간 산문을 폐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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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3일 (불기 2551년)
북한 금강산 신계사 낙성법회에 참석하다.
낙성식에는 남측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 포교원장 혜총스님, 중앙종회의장 자승스님, 중앙신도회 김의정 회장,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스님, 유홍준 문화재청장, 현대아산 윤만준 사장, 북측 유영선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장 등 남북 불교도 400여 명이 참석하다. 전날(12일)에는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증명법사로 ‘금강산 신계사 부처님 봉안 점안식’이 봉행되다. 신계사神溪寺는 신라 법흥왕 때(519년) 보운스님이 창건한 고찰이다. 장안사, 유점사, 표훈사와 더불어 금강산 4대 명찰로 꼽힌다. 임진왜란 때 서산ㆍ사명대사가 승군을 일으켜 지휘한 곳이고, 근대에 와서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스님이 출가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됐는데, 남북 공동으로 발굴조사 등을 거쳐 2004년부터 복원불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 11월 대웅보전 낙성식을 가진 데 이어 만세루, 산신각, 칠성각, 종각, 나한전, 극락전, 어실각, 요사채 등을 차례로 복원했고, 2007년 부처님 봉안과 단청작업 등 주변 정리를 마쳐 4년여에 걸친 복원 불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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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30일 (불기 2551년)
화엄회 스님들과 베트남 호치민시를 방문하여 교육복지시설 건립을 협의하다.
베트남 현지에 직업기술학교ㆍ고아원ㆍ연수원 등을 갖춘 교육복지시설 건립을 위해 3일간의 일정으로 베트남을 방문하다. 베트남에는 스님을 비롯해 화엄회 운영위원장 성직스님,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이사 성운스님, 종회의원 성월ㆍ정묵ㆍ돈관 ㆍ덕문스님 등이 동행하다. 일행은 방문기간 동안 베트남 정부가 제공하기로 한 토지를 답사하고, 호치민시 불교단체연합회와 고엽제우호협의회, 한국베트남우호협회 소속 관계자들을 만나 현지법인 설립, 부지매입 등의 계획을 논의하다. 화엄회 스님들은 10월 2일 호치민외국어정보대학교 강당에서 고엽제피해자, 장애아동, 고아, 대학생 등 100명에게 1만 달러의 장학금을 전달하다.
관련사료
화엄회, 베트남에 교육복지시설 건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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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7일 (불기 2551년)
신정아 사건과 관련한 최근 몇몇 언론의 음해성 보도행태와 유혈사태로 번지고 있는 미얀마 상황에 대해 입장이 담긴 중앙종회 성명서가 발표되다. 미얀마 사태에 대해 “현재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님들이 중심이 된 민주 평화 운동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밝히고,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부처님의 땅 미얀마가 군부 정권의 탐욕으로 더 이상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 지도자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하다. 또한,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가짜학위 사건 관련해 "이번 사건이 종립 동국대학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 대하여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아울러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일부 신문과 방송이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나 마치 불교계가 부정의 온상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는 행태에 대하여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다.
관련사료
조계종 중앙종회 “선정적 음해성 보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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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2일 (불기 2551년)
북한 묘향산 보현사에서 남북 공동법회를 봉행하다.
방북 3일째 보현사 공동법회 후 국제친선관람관을 참관하고 13일 정릉사 동명왕릉을 둘러보고 김포공항에 도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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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1일 (불기 2551년)
북한 백두산 천지에서 '민족화합 평화통일 기원 대법회'를 봉행하다.
전날(10일) 김포공항에서 전세기를 타고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하다. 남북교류협력사업장 방문을 시작으로 3박4일 일정으로 이날 백두산에서 법전스님을 증명법사로 초청한 가운데 법회가 봉행되다. 법회에는 남측에서 자승ㆍ지종ㆍ동춘ㆍ고산ㆍ명선ㆍ고우 스님 등과 북측에서 조선불교도연맹 유영선 위원장 등이 참석하다.
관련사료
법전 종정예하 첫 방북 '통일기원' 백두산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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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7일 (불기 2551년)
제28회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에 참석하다.
3일간 일정으로 해인사에서 '대장경에서 배우다' 주제 세미나와 본대회를 갖고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다. 다음날(28일) 고려 태조 왕건이 건립한 충남 논산 논산 개태사와 부여 불교전래사은비 참배 등 성지순례 후 조계사로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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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4일 (불기 2551년)
불기2551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동시법회 공동발원문’을 낭독문을 낭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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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6일 (불기 2551년)
중앙종회 제173회 임시회가 열리다.
1998년 해종행위 징계자(성문ㆍ현소ㆍ원학ㆍ정우ㆍ월탄ㆍ남현스님)에 대한 사면 동의안을 만장일치 통과시키다. 반면 '멸빈자 사면 종헌 개정안'은 찬성 50표, 반대 18표, 기권 2표로 2표가 모자라 부결되다. 종단은 1994년 이후 분규로 승적을 박탈당한 멸빈자 구제를 위해 2003년 4월, 2004년 3월 두 차례 종헌 개정을 시도했으나 모두 부결된 바 있었다. 한편, 종회에서 불국사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위탁한 석가탑 내 발견유물 일괄(국보 제126호) 반환을 촉구하는 성명서와 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가 있는 충남 내포문화권의 가야산 개발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채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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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0일 (불기 2550년)
은정불교문화진흥원이 불교계 신진학자 육성을 위한 ‘은정학술상’을 제정하다.
1회 수상자로 일본 히메지도쿄대 한국어학과 김천학 조교수의 논문 「균여화엄사상 연구-근기론을 중심으로」를 선정하다. 수상 논문은 〈은정학술총서〉로 발간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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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신진학자 육성 위한 ‘은정학술상’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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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3일 (불기 2550년)
제14대 중앙종회 전반기 의장에 당선되다.
중앙종회 제172회 정기회에서 총 76명 가운데 49표를 획득, 전체 종회의원의 64.4%의 지지를 얻어 종회의장으로 선출됐다. 스님은 선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중앙종회가 될 수 있도록 종책모임간의 의견조율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며 ''화합종회''를 표방하다. 종회 부의장은 장주스님(수석)과 동광스님(차석)이 각각 만장일치로 결정되다. 또 전반기 종회사무처장은 주경스님이 임명되다. 상임위원장은 총무분과위원장 상운스님, 교육분과위원장 장적스님, 포교분과위원장 지원스님, 사회분과위원장 수현스님, 재정분과위원장 향적스님, 호법분과위원장 도완스님, 법제분과위원장 장윤스님이다. 스님은 종회 의장을 맡아 신뢰와 소통의 리더십으로 종회 내 각 종책모임의 이견과 총무원과의 종무를 조정하는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종회 본연의 기능인 입법 활동과 집행부에 대한 감사와 견제 활동을 활발히 지원하면서 위상을 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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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대 중앙종회 의장 자승스님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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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14대 중앙종회 전반기 의장 자승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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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13일 (불기 2550년)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 고문을 맡다.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이하 실록 환수위)는 1913년 데라우치 조선 총독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환수하기 위해 조계종 월정사와 봉선사 주축으로 발족됐다. 오대산 사고본은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도쿄대 도서관에 중종대왕실록 29책, 성종실록 9책 등 모두 46책이 소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다. 이에 월정사에서 조선왕조가 오대산 사고의 관리책임자로 월정사 주지를 임명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1970년 11월 제16차 총회에서 채택된 유네스코의 '문화재의 불법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 등을 들어 반환의 적법성을 주장하다. 실록 환수위 공동의장은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과 봉선사 주지 철안스님이 맡고, 환수위원으로 김삼웅 독립기념관장과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배현숙 계명문화대 교수,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 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실행위원장으로 문만기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을 위촉하다. 실록 환수위는 도쿄대와 협상을 벌인 뒤 결렬 시 도쿄법원에 일본 총리와 도쿄대 총장을 상대로 조정신청을 낼 계획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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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5일 (불기 2550년)
조계종 군종특별교구 상임위원으로 위촉되다.
당해 출범한 조계종 군종특별교구의 상임위원회는 최고 심의의결기구인 상임위원회는 군종교구본사 주지 일면스님, 부주지 계성스님을 비롯 모두 21명으로 구성되다. 위원은 종회의원, 종단 교역직 종무원, 불교 언론사 사장 등과 군불교 현장에서 포교에 매진하고 있는 육해공군 영관급 현역 군승들로 위촉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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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9일 (불기 2549년)
총무원 총무부가 종단 정체성 확립과 승가위의 제고 위한 가사 통일 방침을 교구본사주지회의에 보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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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1일 (불기 2548년)
중앙종회의원 스님들 중심으로 한 승가모임 ‘화엄회’에 참여해 운영위원장을 맡다.
화엄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타워호텔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활동에 들어가다. 창립선언문에서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바탕으로 원융종단의 화합 승가를 구현하기 위해 결사의 마음으로 모였다”며 “갈등과 반목을 없애고 생산적이고 합리적이며 평등한 대중공의를 통해 종단의 발전과 화합승가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히다. 이를 위해 △중앙과 교구의 협력체계 강화 △다양한 종단 재정 확충 △공정한 인사제도 마련 △불교 인재 양성 △승려노후복지 실현 △국제화 인터넷 시대 포교 △불교교세의 지역별 연령별 불균형 극복 △종무행정 평가시스템 구현 △종도 여론 수렴 △사회문제의 불교적 해결 등 10대 사업과제를 제시하다. 고문으로는 용주사 주지 정락스님, 법주사 주지 도공스님, 불국사 주지 종상스님, 화엄사 주지 명섭스님, 선운사 주지 범여스님, 관음사 주지 용주스님, 회장은 장주스님, 수석부회장 인행스님, 운영위원장 자승스님, 운영위위원회 간사 광조스님, 총무간사 도완스님, 대변인 정안스님이 맡다. 당시 중앙종회 종파로는 금강회와 보림회, 실천승가회, 직지사단의 연합체인 원융회, 10여 명의 무당파 의원들이 있었다.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당선에 일조한 실천승가회와 직지사단 연합체인 원융회, 구여권 종회 의원들, 불국사 종상스님 쪽과 원담스님 등 무당파 의원들을 끌어들여 일승회를 결성했다. 일승회 회원 수는 전체 81명의 종회의원 중 40명 남짓의 과반수를 차지했으나 결속력이 약해 종헌 개정 같은 특별 안건뿐 아니라 일반 안건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게다가 총무원 집행부는 동국학원 재단이사회 이사장 선거나 원로회의 의장선거 등 주요한 선거에서 뜻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일승회 종회의원들이 화엄회로 분가했다. 이후 화엄회는 종회 의원 외에 종책 개발과 실천에 관심 있는 스님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여 종책 자료집 발간과 종책 포럼을 열었다. 또한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 지원과 캄보디아,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의 저소득계층에게 한국불교의 보살심을 전하고, 국제포교 사업을 독자 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로터스 월드와 지구촌공생회 등 교계 국제불교 단체 지원으로 확장했다.
관련사료
종회의원 절반‥현 총무원장 당선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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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29일 (불기 2546년)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집행위원으로 평양에 가다.
방북은 윤이상 음악연구소 초청으로 이뤄지다. 2001년 8ㆍ15 평양축전 때 故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씨가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이하 민추본)에 악기 지원을 요청했고, 2002년 6월 19일 10만 달러 상당의 악기를 보낸 바 있었다. 방북은 조계종 민추본 본부장 정련스님, 총무원 총무부장 원택스님, 민추본 상임집행위원 명진스님, 기획홍보국장 이환래씨와 함께 가다. 6월 29일 남북한 서해 교전으로 긴장이 고조됐으나 민간 교류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편을 타고 평양에 도착해 7월 6일까지 머물면서 조선불교도연맹 박태화 위원장 등 관계자들을 만났다. 민추본은 2000년 창립 이후 남북 불교의 동질성 회복과 화합을 위해 불교적 관점에서의 통일정책 연구, 남북불교 교류, 인도적 지원 등 다양한 통일사업을 펼쳐 조선불교도연맹와 교류 및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 등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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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에도 남측인사 50명 입북(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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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23일 (불기 2543년)
정대스님이 오전 9시30분 조계사 대웅전에서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 중앙종회사무처 조계사 종무원 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무원장 취임 고불식을 갖다.
제30대 총무원 집행부 첫 인사로 총무부장 원택스님, 문화부장 일철스님, 사회부장 양산스님, 호법부장 종지스님 등 4명의 부장 스님을 유임 발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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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 20일 (불기 2543년)
제29대 총무원(총무원장 고산스님) 재무부장에 임명되다.
제29대 총무원 출범한지 8개월여만에 집행부 부분 개편 인사가 단행되다. 스님이 재무부장에 선임되고, 총무부장 원택스님과 기획실장 만성스님, 호법부장 종고스님은 유임, 문화부장 일철스님, 사회부장 양산스님, 사서실장 성조스님이 전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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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23일 (불기 2542년)
정화개혁회의의 총무원 청사 점거 사태가 경찰 투입으로 43일만에 일단락되다. 한편, 29일로 예정된 총무원장 선거에 고산스님(쌍계사 주지)과 지선스님(백양사 주지)이 후보로 등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