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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15일 (불기 2538년)
중앙종회가 제113회 임시회를 열어 개혁회의에 종단의 전권을 이양하고 제10대 중앙종회를 자진 해산하다. 이에 앞서 원로회의의 제27대 총무원장 선출 인준 거부에 따른 총무원장 불신임과 종정 불신임 건을 확인하고 의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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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10일 (불기 2538년)
전국승려대회가 오후 1시 조계사에서 스님 2,500여 명과 재가불자 1,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봉행되다. 4.10 조계사 승려대회에서 △종정 불신임 △총무원장 해임 및 모든 공직 박탈 △개혁회의 출범 등이 결의되다. 개혁회의 의장에 월하月下스님, 부의장에 설조雪照ㆍ종하스님이 추대되고, 상임위원장에 탄성呑星스님이 선임되다. 경찰이 재투입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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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9일 (불기 2538년)
종정 서암스님이 승려대회를 금한다는 교시를 발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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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3일 (불기 2538년)
종정 서암스님이 사태 수습을 위한 원로회의 소집 교시를 발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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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 30일 (불기 2538년)
중앙종회가 제112회 임시회를 열어 제27대 총무원장으로 의현스님을 선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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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 29일 (불기 2538년)
새벽 6시30분 조계사에 총무원장 측이 동원한 폭력배 300여 명이 난입해 농성 중이던 범종추 스님들을 폭행하다. 이날 하루종일 총무원 청사를 두고 총무원 집행부 스님들과 범종추 스님들이 대립한 가운데 총무원의 요청으로 오후 6시40분 투입된 종로경찰서 소속 전경들에 의해 농성을 벌이던 범종추 스님들이 연행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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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 23일 (불기 2538년)
실천승가회, 선우도량, 중앙승가대학생회, 동국대석림동문회 등 8개 승가단체가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상임대표 청화ㆍ시현ㆍ도법스님, 이하 범종추)를 결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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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2월 5일 (불기 2538년)
연주암 주지 취임식을 갖다.
연주암 주지 교체는 총무원 분립 갈등과 관련이 있어 주목을 끌었다. 오전 9시30분쯤 임기 만료된 강남 총무원 쪽 전임 주지(종상스님)를 지지하는 스님과 신도들이 취임식을 저지하는 소동이 벌어졌으나 큰 불상사 없이 입주를 마쳤다.
관련사료
연주암 폭력사태없이 주지 검수인계 마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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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17일 (불기 2538년)
중앙종회가 제111회 임시회를 열어 서암스님의 종정 추대를 공식화하기로 하고, 종헌종법 개정은 차기 종회로 다시 미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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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10일 (불기 2538년)
관악산 연주암戀主庵 주지에 임명되다.
연주암은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 연주봉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의 말사이다. 통일신라 677년(문무왕 17)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관악사冠岳寺라 하였다. 조선 개국 1392년(태조 1)에는 이성계가 의상대를 중건하고 그의 처남인 강득룡과 서견ㆍ남을 등이 이곳에서 송도를 바라보며 고려왕조를 연모하면서 통곡하였기 때문에 연주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1396년에는 연주암을 신축하였고, 1411년(태종 11)에는 효령대군이 이건하여 중건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868년(고종 5)에 명성황후의 하사금으로 극락전과 용화전을 중수하였고, 1883년에 대방을 중수하고 기와불사를 하였다. 1886년에는 행문幸文이 법당과 나한전을 중수하였고, 1918년에는 경산慶山이, 1929년에는 재운在芸이, 1936년에는 교훈敎訓이 중수하였다. 1975년 송원松園이 대웅전을 신축하였고, 1979년에 연주대와 삼성각을 중수하였으며, 1981년 요사 개축, 1996년 관음전 개축, 2003년 영산전 중수, 2005년 연주대를 대수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관음전, 영산전, 연주대(응진전), 삼성각 등을 비롯하여 효령대군의 진영을 봉안한 효령각이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시도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은 고려 후기 때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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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7월 28일 (불기 2537년)
중앙종회가 제109회 임시회를 열어 재산 등록 안건 등을 다루다. 관련해 종헌에 재산 등록 불응 사찰 주지에 대한 총무원장의 직권 면직 규정(제73조)을 개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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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9월 (불기 2535년)
'정법수호회' 회장 자격으로 중흥회가 개최한 전국승려대회에 참가하다.
당시 종정 추대 문제에서 비롯돼 총무원장 퇴진을 놓고 총무원(의현스님) 측과 반 총무원(중흥회 능혜스님 등) 측이 갈등을 빚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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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 18일 (불기 2535년)
안양 삼막사三幕寺 주지를 맡다.
삼막사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삼성산(석수1동 241ㆍ54)에 있는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스님은 삼막사 주지를 1994년 1월 18일까지 맡았다.
삼막사는 통일신라 677년(문무왕 17) 원효ㆍ의상ㆍ윤필 3대사가 관악산에 들어와 막을 치고 수도하다가 지은 사찰이다. 기록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신라 말 도선이 중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개칭했다고 한다. 이후 고려 태조가 중수하여 삼막사라 하였고, 1348년(충숙왕 4) 나옹이 이 절에 머무르면서 수도하였다. 조선 개국 때인 1394년(태조 3)에는 왕사 무학이 이 절에서 국운의 융성을 기원했는데, 이러한 인연으로 1398년 왕명에 의해 중건되었다. 그 뒤 몇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쳐 1880년(고종 17) 의민이 명부전을 짓고 이듬해 칠성각을 지은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해 명부전ㆍ망해루ㆍ대방ㆍ요사ㆍ칠성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무학대사가 석조기둥으로 중수한 다포계양식 건물이며, 내부에 봉안된 탱화와 범종은 광무연간에 제작된 것이다. 청명한 날 망해루에서는 서해가 보이고, 명부전 십대왕상은 이 절의 보물이다. 이밖에도 높이 2.55미터의 삼층석탑과 거북모양의 감로정석조가 있으며, 자연암석에 양각한 아미타삼존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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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3월 (불기 2532년)
'대승불교승가회'에 참여하다.
대승불교승가회는 1987년 6월항쟁 당시 불교계의 민주화 열기를 결집시킨 ‘정토구현전국승가회’(1986년 6월 5일 출범)의 맥을 잇는 승가조직이다. 송산松山, 종림宗林, 명진明盡, 자승慈乘, 종태宗跆, 성문性門, 현응玄應, 각신覺腎, 원택圓澤, 설봉雪峰, 주영周暎, 여연如然 스님 주도 아래 30~40대 선승과 학승 등 소장 승려 1백여 명이 참여했고, 초대 회장은 송산스님이 맡았다. 3월 25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소재 개운사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조직은 산하에 이념교육, 제도교육, 인권, 통일, 노동, 공해대책, 민족문화 등 7개 위원회를 구성하고 부설 민족불교연구소를 두었다. 88 서울올림픽 시기에 동국대석림회 등 10여 단체와 함께 ‘민족화합공동올림픽추진본부’를 결성하여 통일운동을 펼치면서 80년대 불교운동의 한 획을 그었다.
관련사료
[역사 속의 오늘] 정토구현전국승가회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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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사료
불교대중과 국민여러분에게 드리는 글 - 대승불교 승가회 창립 취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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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월 28일 (불기 2532년)
용인 대덕사大德寺 주지를 맡다.
대덕사는 스님이 함대덕상보살과 1983년 설립한 절이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 기곡로 29-13(하갈동)에 위치해 있으며, 1988년 1월 조계종 사찰로 등록되었디. 현재는 용주사 말사로 수원과 용인 지역의 포교, 교육도량으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 스님은 대덕사 주지를 1991년 3월 18일까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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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8월 21일 (불기 2531년)
이천 영월암 주지를 이듬해 1월 13일까지 다시 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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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9월 7일 (불기 2530년)
해인사에서 열린 10.27법난 6주기 전국승려대회에 참가하다.
대회에 모인 전국의 2천여 명의 스님들은 불교자주화와 사회민주화, 자주통일을 주장하다. 9.7 해인사 승려대회 집행위원장은 월주스님, 준비위원장 종하스님, 대회장은 해인사 주지 법전스님이 맡다. 대회는 해인사 부방장 혜암스님의 법어로 시작하여 대회사, 경과보고, 불교탄압 실태보고 순으로 진행되다. 이어 사회민주화와 민족자주권 수호를 위한 불교의 사회 참여를 천명하고, 지선스님의 선언문 낭독, 초우스님의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과 발원문, 결의문을 채택하다. 석림회 성조스님의 결의문 낭독 때 지광스님이 오른쪽 손가락 4개를 잘라 ‘불자여 눈을 떠라’라는 혈서를 쓰다. 이후 스님 1천여 명이 혈서와 피켓을 들고 3.5km 떨어진 가야산 국립공원 입구까지 행진하며 ‘불교재산관리법 철폐’, ‘독재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다. 또한, 자주적 민주적 불교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불교관계 악법 철폐와 10.27법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는 한편, 5.3인천사건으로 구속 수배 중인 불자들의 석방 및 정권의 불교 탄압 등에 강력 항의하다.
관련사료
승려2千(천)명海印寺(해인사)서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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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사료
10.27 법난을 규탄하며 불교자주쟁취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자 - 10.27 법난 6주기를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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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 23일 (불기 2530년)
성남 망경암望京庵 주지를 맡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553-1) 영장산에 있는 망경암에선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보여 서울을 바라보는 암자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 스님은 망경암에 그해 8월 20일까지 있었다.
망경암은 고려 말과 조선 초 임금들이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빌었던 곳이다. 조선조 세종의 7째 아들인 평원대군과 손자 제안대군이 단을 설치하고 분향하여 충효를 다짐하던 곳으로 전해진다. 칠성신앙과 관련된 도량으로 암벽을 깎아내고 이 안에 부조로 불상을 새겨 넣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마애여래좌상 주변에는 광무 7년(1897년) 이규승이 관음상을 새겼다는 기록이 있다. 마당 한쪽에 부처님이 내려주신 복된 감로수가 마르지 않는 복우물이 조성되어 있다. 성남시 복정동 지명은 이 우물에서 비롯됐다. 사찰 전각들로는 대웅전, 삼성각, 미륵전이 있는데, 모두 근래 조성된 것들이다. 거대한 미륵대불과 5층석탑도 있다. 망경암 자연암벽에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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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544년)
선우도량'이 발족되다. 청정가풍을 되살리는 수행과 교육을 중시한 선우도량은 도법, 수경, 현응 스님 등이 이끌었고, 대승불교승가회 쪽 스님들이 많이 합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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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25일 (불기 2528년)
수원포교당 주지를 맡다.
수원포교당은 현재 수원사水原寺로 개명했으나 당시는 화광사華光寺로 불렸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92번지에 위치해 있다. 스님은 수원포교당 주지를 1986년 1월 23일까지 맡았다.
수원포교당은 1920년 4월 8일 당시 용주사 주지 대련스님이 일반 대중들에게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법당과 관음전, 요사를 지은 게 시작이었다. 사찰 창건 이전 이곳에는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까지 수령 300년 정도의 느티나무가 있다. 당시 지은 법당이 현재의 극락대원전이며, 관음전이 현재의 정토수행관이다. 1927년 손계조 포교사가 옥돌관음상을 봉안했고, 1957년 화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4년 삼존불 후불탱화, 칠성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가 극락대원전에 봉안되었고, 1973년 정하스님이 석조아미타여래상을 조성하면서 법당을 중수, 단청했다. 1980년 법전스님이 삼존불을 개금했으며, 1981년 정락스님, 1984년 자승스님 노력으로 불교 포교의 중심 역할을 하는 전국 3대 포교당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