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통합검색

통합검색

1,253개의 검색 결과를 찾았습니다.

상세연보833

  • 2004년 2월 27일 (불기 2548년)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하다.

    은정불교문화진흥원은 정대스님이 모친 故 최은수에게서 상속받은 유산을 출연해 2002년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불자 인재 양성과 이웃과의 공생공존을 목표로 소년소녀가장돕기, 장학사업, 학술지원사업 등을 벌여 은정학술상 시상, 전국청소년 불교교리경시대회, 나란다축제 개최와 은정학술총서를 발행하고 있다. 스님은 이사장을 맡은 이래 불교학자 지원을 통한 불교학 발전이란 인재불사에 힘을 쏟았다.
    관련사료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이사장 자승스님
    바로가기
  • 2003년 11월 23일 (불기 2547년)
    정대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장이 봉행되다.
    용주사 주지 정락스님, 장의위원회 호상 정휴스님, 동국학원 이사 장윤스님, 상좌 성주ㆍ자승ㆍ성월ㆍ성운 스님 등 100여 명이 참석하다. 장의위원회가 법구에 대한 습골 후 몸에서 나온 사리를 수습해 공개하고, 유골은 정대스님이 평소 주석하던 안양 삼막사 월암당에 모시다.
  • 2002년 6월 29일 (불기 2546년)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집행위원으로 평양에 가다.
    방북은 윤이상 음악연구소 초청으로 이뤄지다. 2001년 8ㆍ15 평양축전 때 故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씨가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이하 민추본)에 악기 지원을 요청했고, 2002년 6월 19일 10만 달러 상당의 악기를 보낸 바 있었다. 방북은 조계종 민추본 본부장 정련스님, 총무원 총무부장 원택스님, 민추본 상임집행위원 명진스님, 기획홍보국장 이환래씨와 함께 가다. 6월 29일 남북한 서해 교전으로 긴장이 고조됐으나 민간 교류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편을 타고 평양에 도착해 7월 6일까지 머물면서 조선불교도연맹 박태화 위원장 등 관계자들을 만났다. 민추본은 2000년 창립 이후 남북 불교의 동질성 회복과 화합을 위해 불교적 관점에서의 통일정책 연구, 남북불교 교류, 인도적 지원 등 다양한 통일사업을 펼쳐 조선불교도연맹와 교류 및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 등을 추진했다.
    관련사료
    서해교전에도 남측인사 50명 입북(종합)
    바로가기
  • 2001년 2월 (불기 2545년)
    이른바 ‘신밧드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다.
    스님과 명진스님 등 4명이 저녁식사 후 2차로 서울 신사동 대로변에 있던 신밧드라는 룸살롱에 갔다가 이를 본 불자가 인터넷에 이 사실을 올리면서 문제가 됐던 사건이다. 스님은 체질상 술을 못하는 비주류파다.
  • 2000년 11월 (불기 2544년)
    제12대 중앙종회 재정분과위원장으로 선출되다.
    중앙종회 제148회 정기회에서 의장에 지하스님, 수석부의장 청화스님, 차석부의장 명진스님이 선출되고, 상임분과위원회가 구성되다. 총무분과위원장 정우스님, 재정분과위원장 자승스님, 호법분과위원장 정념스님, 사회분과위원장 화범스님, 포교분과위원장 장곡스님, 교육분과위원장 향적스님, 사무처장 원행스님.
  • 2000년 10월 15일 (불기 2544년)
    연주암 대웅전 법당에 우담바라 꽃이 피어 화제가 되다.
    3천년만에 한 번 피어난다는 꽃 우담바라가 연주암 대웅전 석가모니부처 오른팔과 좌대, 문수동자 등에 9송이가 피다. 연주암에서는 "큰 스님(자승스님)이 오후에 깜빡 낮잠이 든 사이 대웅전 법당이 광채로 휘감긴 꿈을 꾸고 확인한 결과 우담바라를 발견했다"며, "국운이 강성해 질 것임을 예고하는 길조"라고 설명하다.
    관련사료
    '우담바라' 잇달아 화제
    바로가기
  • 1999년 12월 6일 (불기 2543년)
    과천종합사회복지관이 서울 금천구청이 공모한 가산종합사회복지관의 위탁운영 공모 신청을 철회, 천주교 하상장애인복지관에 양보하다.
    스님이 하상장애인복지관장 김해리나 수녀와 대화 끝에 결단을 내리다.
    관련사료
    두 종교계 아름다운'양보와 감사'
    바로가기
  • 1999년 11월 15일 (불기 2543년)
    조계종 제30대 총무원장으로 정대正大스님이 당선되다.
    정대스님이 선거인단 재적과반수인 166표를 얻어 실천승가회를 이끌어온 지선知詵스님과 32표 차가 나다.
  • 1999년 11월 14일 (불기 2543년)
    조계종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총무원장 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하다. 개정 선거법은 중앙종회의원 81명과 전국 교구본사에서 선출된 240명의 선거인 등 321명의 무기명 비밀투표로 총무원장을 선출하도록 정하다.
  • 1999년 8월 31일 (불기 2543년)
    연주암이 주관하고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주최한 장애인 제주도 스쿠버다이빙 체험 '새로운 도전, 새로운 세상' 행사가 열리다.
    전날 하반신이 불편한 15명의 장애인들이 과천중앙공원 야외무대에서 발대식을 갖고 제주도로 출발, 서귀포시 문섬 앞바다에서 이날 오전과 오후 한차례씩 조계종 스님들로 구성된 다이버모임 천수천안동우회와 제주 현지 다이버 등 자원봉사자와 함께 1대1로 짝을 이뤄 바다 속 비경을 체험하다. 바닷속 체험을 위해 참가자들은 8월 한 달 동안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수영장에서 주 4회씩 이론교육과 실기교육을 받았고, 연습과정부터 체험행사까지 MBC TV 「현장! 카메라 르포」와 KBS 2TV 「생방송 좋은 아침입니다」가 녹화방송하다.
    관련사료
    장애인 15명 해저 비경 탐험
    바로가기
  • 1999년 8월 20일 (불기 2543년)
    제29대 총무원(총무원장 고산스님) 재무부장에 임명되다.
    제29대 총무원 출범한지 8개월여만에 집행부 부분 개편 인사가 단행되다. 스님이 재무부장에 선임되고, 총무부장 원택스님과 기획실장 만성스님, 호법부장 종고스님은 유임, 문화부장 일철스님, 사회부장 양산스님, 사서실장 성조스님이 전보되다.
  • 1998년 12월 30일 (불기 2542년)
    원로회의(의장 혜암스님)가 총무원장 당선자 고산스님을 인준하다. 또 지난 11.30 승려대회에서 결의한 월하 종정 불신임과 정화개혁회의 월탄ㆍ현호스님 중징계를 추인하다.
  • 1998년 12월 23일 (불기 2542년)
    정화개혁회의의 총무원 청사 점거 사태가 경찰 투입으로 43일만에 일단락되다. 한편, 29일로 예정된 총무원장 선거에 고산스님(쌍계사 주지)과 지선스님(백양사 주지)이 후보로 등록하다.
  • 1998년 12월 6일 (불기 2542년)
    중앙종회와 총무원 측 스님과 신도 등 1,500여 명이 오후 2시 서울 광화문빌딩 앞에서 '종헌종법 수호와 공권력 규탄 범불교도 대회'를 열다.
    정화개혁회의 스님과 신도 700여 명은 조계사에서 '조계사 대웅전 방화 규탄 대회'를 열다.
    관련사료
    쪼개진 조계종 휴일'勢(세)대결'
    바로가기
  • 1998년 11월 30일 (불기 2542년)
    종헌종법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대회장 탄성스님)가 오후 2시30분 조계사 앞에서 스님 1,200여 명과 신도 등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다. 대회에 참석한 스님들은 월하 종정 불신임과 정화개혁회의의 즉각 해산 및 총무원 청사에서 철수, 총무원장 선거 실시 등을 결의하다. 대회를 마친 스님과 신도들이 총무원 청사 진입을 시도, 이를 저지하는 정화개혁회의 측 스님들과 폭력 사태가 벌어지다.
    관련사료
    조계종 폭력 밤샘 대치
    바로가기
  • 1998년 11월 14일 (불기 2542년)
    원로회의 스님 7명이 서울 양재동 구룡사에서 종정 월하스님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중앙종회 해산과 월주 총무원장의 해임을 결의하다. 또 혜암 원로회의 의장을 제명하고, 새 의장에 벽암 부의장을 선출하다. 이날 원로회의는 총원 22명 중 7명이 참석, 8명의 위임장을 받다. 혜암스님은 원로회의 소집을 거부하여 불참했고,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아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다. 중앙종회 의장 법등스님도 원로회의법에 위배된다는 성명을 발표하다.
  • 1998년 10월 (불기 2542년)
    제29대 총무원장 선거에 월주月珠스님 3선 출마 여부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다. 월주스님은 80년 6개월여 간 총무원장(제17대)으로 재임한 바 있어 출마의사를 밝힌 다른 스님들이 "월주스님은 총무원장 3선에 해당하여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는 종헌에 위배된다"며 불출마를 종용하다. 반면, 월주스님 측은 "당시 신군부에 의해 강제 사퇴당한 것으로 94년 제정 공포된 종헌을 소급 적용할 수 없다"고 반발하다. 총무원장은 94년 종단 개혁을 통해 제정 공포된 종헌에 따라 전국 24개 교구에서 뽑은 선거인단 240명과 중앙종회의원 81명이 선출하는데, 교구본사 주지는 교구종회의원 2명을 포함해 선거인단 12명을 결정하도록 되어 있어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해 8개 교구에서 임기 만료로 치러진 주지 직접 선거는 총무원장 선거 대리전 양상을 띠었다.
  • 1998년 3월 26일 (불기 2542년)
    과천 별양동에 문을 연 과천종합사회복지관 개관식을 갖다.
    과천복지관은 저소득층, 장애인 및 기타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가정복지사업부터 아동, 청소년, 장애인, 노인, 지역복지사업을 활발히 벌여 지역내 종합복지관으로 자리매김했다.
  • 1998년 2월 (불기 2542년)
    연주암의 환경친화적 불사와 무료 점심 공양이 회자되다.
    스님이 주지에 부임한 이래 공사가 중단돼 있던 선불전을 천수관음전으로 바꿔 불사를 회향, 지하에는 현대식 주방시설과 식탁을 갖췄다. 공양간 한켠에 기도객들이 묵어갈 수 있는 방사를 지었고, 대중스님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요사채도 보수했다. 연주암 상징인 연주대에 기와불사와 종불사도 마쳤고, 효령대군 영정은 종각 위쪽에 효령각을 신축해 모셨다. 고지대라 겪는 식수난을 3년여에 걸친 시추 노력 끝에 암반수를 찾아 해결했고, 오폐수 및 화장실 자체 정화 시설을 만들었다. 또한, 사찰 토지를 무단 사용중이던 기상대 관측소를 철거시켰고, 군부대로부터 헬기장 유류고 등 1,500평을 반환받았다. 연주암 복원을 위해 관악사지 발굴사업을 추진하여 1250나한 조성불사와 함께 나한기도도량으로 가꿔나갔다.
    관련사료
    연주암이 달라졌다 -1
    바로가기
    관련사료
    주지 자승스님 인터뷰
    바로가기
  • 1997년 12월 (불기 2541년)
    연주암이 위탁 운영하는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과천종합사회복지관의 관장을 맡아 지역 복지사업과 불교복지에 원력을 세우다.
    과천 시민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지역신문 『과천21』 발행인을 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