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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0개의 검색 결과를 찾았습니다.

상세연보969

  • 1994년 10월 2일 (불기 2538년)
    원로회의가 개혁회의에서 정한 새 종헌안을 인준하다.
    관련사료
    불교 조계종 내달 새종단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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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9월 27일 (불기 2538년)
    개혁회의가 중앙종회의원과 교구종회에서 선출하는 선거인단에 의한 총무원장 선출 및 본사주지 중앙종회 의원 겸직 금지 등을 담은 종헌 개혁안을 확정짓다. 개혁회의는 △정법종단의 구현 △불교자주화 실현 △종단운영의 민주화 △청정교단의 구현 △불교의 사회역할 확대 등 5대 지표를 설정하고 종단 개혁에 나서 총무원장 선거권을 320여 명으로 확대하고, 교구본사 주지, 중앙종회의원, 교구종회의원 등 종단의 주요 소임자를 직접 선거로 선출케 했다. 또, 종무행정 체계를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으로 분리해 각각의 역할을 전문성에 근거해 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총무원의 역할을 보완하고 독주를 견제할 수 있도록 중앙종회의 권한을 확대시켰다. 종회의원은 종단의 다른 주요 소임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대신 종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 대해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징계를 할 경우 종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그 지위를 보장했다. 사법기능인 호계원의 소관업무도 확대해 선거 관련 심판 등을 관장하게 하고, 특히 종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종단 안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종단 재정의 공개운영을 원칙으로 함을 종헌에 명문화하고, 사설사암의 종단 등록을 의무화하면서도 운영의 독립성을 인정토록 했다. 사찰이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선 감사기관의 조사를 거쳐 총무원의 허가를 얻도록 하고, 총무원이 종단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선 중앙종회의 동의를 얻게 했다. 참선수행 도량인 선원을 기초선원과 전문선원으로 구분하고, 기초선원 이수자는 종단의 기본교육 이수자와 동등 자격을 부여해 전문선원에 입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단일 계단을 운영하는 동시에 계를 받기 위해선 종단에서 정한 의무교육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했다.
  • 1994년 4월 22일 (불기 2538년)
    종회에서 전권을 위임받은 개혁회의가 99명의 의원을 확정 발표하고 집행부를 구성하는 등 종단개혁을 위한 활동에 착수하다.
    개혁회의 탄성呑星스님이 제27대 총무원장직을 수행하다.
  • 1994년 4월 10일 (불기 2538년)
    전국승려대회가 오후 1시 조계사에서 스님 2,500여 명과 재가불자 1,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봉행되다. 4.10 조계사 승려대회에서 △종정 불신임 △총무원장 해임 및 모든 공직 박탈 △개혁회의 출범 등이 결의되다. 개혁회의 의장에 월하月下스님, 부의장에 설조雪照ㆍ종하스님이 추대되고, 상임위원장에 탄성呑星스님이 선임되다. 경찰이 재투입되다.
    관련사료
    조계종'개혁회의'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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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4월 9일 (불기 2538년)
    종정 서암스님이 승려대회를 금한다는 교시를 발표하다.
  • 1994년 4월 5일 (불기 2538년)
    혜암慧菴스님(원로회의 부의장)이 소집한 원로회의에서 총무원장 사퇴 및 4월 10일 승려대회 소집을 결의하다.

    교수, 문인, 법조인, 언론인 등 각계 인사들의 폭력배 난동을 방관한 정부 비판과 총무원장 사퇴 요구가 잇따르는 가운데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지도자까지 사상 유례없는 종교탄압이라며 경찰을 강하게 비판하다.
  • 1994년 4월 3일 (불기 2538년)
    종정 서암스님이 사태 수습을 위한 원로회의 소집 교시를 발표하다.
  • 1994년 3월 29일 (불기 2538년)
    새벽 6시30분 조계사에 총무원장 측이 동원한 폭력배 300여 명이 난입해 농성 중이던 범종추 스님들을 폭행하다. 이날 하루종일 총무원 청사를 두고 총무원 집행부 스님들과 범종추 스님들이 대립한 가운데 총무원의 요청으로 오후 6시40분 투입된 종로경찰서 소속 전경들에 의해 농성을 벌이던 범종추 스님들이 연행되다.
    관련사료
    조계사에 경찰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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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3월 28일 (불기 2538년)
    범종추 소속 스님과 신도들이 종단개혁을 위한 제2차 구종법회를 열고 농성을 계속하다.
  • 1994년 3월 26일 (불기 2538년)
    범종추 소속 스님 200여 명이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상무대 비리 진상규명과 의현스님의 총무원장 3선 연임 반대 구종법회를 열고, 총무원장과 집행부 사퇴를 요구하다. 법회 후 청화스님 등 범종추 대표 10여 명이 단식농성에 들어가다.
    관련사료
    종단개혁'승려 2백명 거리행진 '상무대'진상규명등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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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1월 17일 (불기 2538년)
    중앙종회가 제111회 임시회를 열어 서암스님의 종정 추대를 공식화하기로 하고, 종헌종법 개정은 차기 종회로 다시 미루다.
    관련사료
    조계종 개혁안 종회처리 또 미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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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1월 10일 (불기 2538년)
    관악산 연주암戀主庵 주지에 임명되다.

    연주암은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 연주봉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의 말사이다. 통일신라 677년(문무왕 17)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관악사冠岳寺라 하였다. 조선 개국 1392년(태조 1)에는 이성계가 의상대를 중건하고 그의 처남인 강득룡과 서견ㆍ남을 등이 이곳에서 송도를 바라보며 고려왕조를 연모하면서 통곡하였기 때문에 연주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1396년에는 연주암을 신축하였고, 1411년(태종 11)에는 효령대군이 이건하여 중건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868년(고종 5)에 명성황후의 하사금으로 극락전과 용화전을 중수하였고, 1883년에 대방을 중수하고 기와불사를 하였다. 1886년에는 행문幸文이 법당과 나한전을 중수하였고, 1918년에는 경산慶山이, 1929년에는 재운在芸이, 1936년에는 교훈敎訓이 중수하였다. 1975년 송원松園이 대웅전을 신축하였고, 1979년에 연주대와 삼성각을 중수하였으며, 1981년 요사 개축, 1996년 관음전 개축, 2003년 영산전 중수, 2005년 연주대를 대수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관음전, 영산전, 연주대(응진전), 삼성각 등을 비롯하여 효령대군의 진영을 봉안한 효령각이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시도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은 고려 후기 때 세운 것이다.
  • 1993년 11월 18일 (불기 2537년)
    중앙종회가 제110회 정기회를 열어 제8대 종정으로 원로회의가 추대한 서암스님을 수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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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종 중앙종회 관심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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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년 7월 28일 (불기 2537년)
    중앙종회가 제109회 임시회를 열어 재산 등록 안건 등을 다루다. 관련해 종헌에 재산 등록 불응 사찰 주지에 대한 총무원장의 직권 면직 규정(제73조)을 개정하다.
    관련사료
    조계종'재산등록'종헌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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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년 3월 9일 (불기 2537년)
    실천불교전국승가회(회장 청화靑和스님, 1992년 창립, 이하 실천승가회)가 종회의원 직선제와 겸직금지를 골자로 한 조계종 종헌종법 개정을 촉구하는 공개청원서를 총무원과 원로회의, 중앙종회에 제출하다. 실천승가회는 불교계의 사회운동을 이끌던 불교정토구현전국승가회(1986년 창립)와 대승불교승가회(1988년 창립)를 비롯해 불교계 진보세력들로 구성된 승가 단체다. 불교정토구현전국승가회는 사회의 억압구조를 타파하고 정토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지선, 청화 스님 등이 이끌었다. 대승불교승가회는 사회 민주화와 종단 개혁 기치를 내걸고 활동(위 연보 참조)했는데, 90년대 들어와 사회민주화가 제도적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두 단체가 따로 활동할 이유가 없어졌고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의 깃발을 올리며 결합했다.
  • 1992년 8월 14일 (불기 2536년)
    조계종 제10대 중앙종회 의원이 되다.
    스님은 직능대표 간선으로 피선되다. 제10대 중앙종회(의장 종하鍾夏스님)는 24개 교구본사에서 직접선거로 선출된 48명과 간선선출위원회에서 뽑는 직능대표 27명 등 총 75명의 스님들로 구성됐다. 종회 의원은 본사 또는 주요 사찰의 주지를 겸하고 있었고, 간선선출위원회 위원장은 총무원장이었다. 한편, 조계종 종단이 2개의 총무원 체제로 나뉘어 1년여 가까이 벌인 분립 사태는 제10대 종회 구성을 계기로 미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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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무원'두조각'1년 조계종분규 진정국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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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년 4월 29일 (불기 2536년)
    성철性徹스님이 원로회의의 종정 추대를 수락하다. 성철스님은 제6대 종정으로 91년 1월 임기를 마쳤으나 종단에서 제7대 종정 추대와 종권을 둘러싼 내분이 있어 왔다. 이날 종정직을 수락한 성철스님은 다음날인 석탄일에 법어를 발표했다.
  • 1992년 1월 16일 (불기 2536년)
    조계종단은 90년부터 강북 총무원(의현義玄스님)과 강남 총무원(벽암碧岩스님)으로 나뉘어 갈등을 빚었는데, 정부 중재로 양측이 30인 제도개혁구성위원회 구성을 합의했으나 원로회의(의장 서암西庵스님)의 반대로 무산되다.

    원로회의는 방장이나 조실 등 원로 스님들로 구성되는 종단의 최고권위기구다. 원로회의가 정식 발족한 것은 1980년대 초로 과거 장로회의가 발전된 형태였다. 종헌에는 승랍 40세, 연령 65세 이상 종사급 원로 비구로 구성하며 의원은 중앙종회에서 추대하도록 되어 있다. 임기는 10년이고 정원은 10인 이상 21인 이내다. △종헌 개정안과 △총무원장에 대한 인준 및 불신임 결의안 △중요 종책의 조정 등을 원로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 1991년 9월 (불기 2535년)
    '정법수호회' 회장 자격으로 중흥회가 개최한 전국승려대회에 참가하다.
    당시 종정 추대 문제에서 비롯돼 총무원장 퇴진을 놓고 총무원(의현스님) 측과 반 총무원(중흥회 능혜스님 등) 측이 갈등을 빚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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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냐 조계종 내분「분종」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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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년 3월 18일 (불기 2535년)
    안양 삼막사三幕寺 주지를 맡다.
    삼막사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삼성산(석수1동 241ㆍ54)에 있는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스님은 삼막사 주지를 1994년 1월 18일까지 맡았다.

    삼막사는 통일신라 677년(문무왕 17) 원효ㆍ의상ㆍ윤필 3대사가 관악산에 들어와 막을 치고 수도하다가 지은 사찰이다. 기록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신라 말 도선이 중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개칭했다고 한다. 이후 고려 태조가 중수하여 삼막사라 하였고, 1348년(충숙왕 4) 나옹이 이 절에 머무르면서 수도하였다. 조선 개국 때인 1394년(태조 3)에는 왕사 무학이 이 절에서 국운의 융성을 기원했는데, 이러한 인연으로 1398년 왕명에 의해 중건되었다. 그 뒤 몇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쳐 1880년(고종 17) 의민이 명부전을 짓고 이듬해 칠성각을 지은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해 명부전ㆍ망해루ㆍ대방ㆍ요사ㆍ칠성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무학대사가 석조기둥으로 중수한 다포계양식 건물이며, 내부에 봉안된 탱화와 범종은 광무연간에 제작된 것이다. 청명한 날 망해루에서는 서해가 보이고, 명부전 십대왕상은 이 절의 보물이다. 이밖에도 높이 2.55미터의 삼층석탑과 거북모양의 감로정석조가 있으며, 자연암석에 양각한 아미타삼존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