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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연보3

  • 2023년 3월 8일 (불기 2567년)
    인도순례 28일차, '춘다의 마을'을 지나 부처님 열반지 쿠시나가르에 도착하다.
    숙영지에서 4km를 걸어 파질나가르에 도착하다. 파질나가르는 경전에 나오는 파바마을로 춘다의 집이 있었던 곳이다. 순례단은 오전 3시30분경 파바마을 인근 400m 떨어진 길 가장자리에서 첫 번째 휴식을 취하다. 파바마을 대장장이 아들 춘다는 부처님께서 망고 동산에 머물고 계신다는 말을 듣고 달려와 가르침을 받았다. 설법을 듣고 감동하여 다음 날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렸다. 공양 중에는 ‘수카라 맛다바’라는 요리가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그 음식이 상했음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주지 못하게 하고 드셨다. 공양이 끝나고 부처님은 춘다를 위해 설법을 해주신 뒤 몸이 불편했지만 대중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셨다. 부처님이 가셨던 길을 따라 순례단도 4km를 더 걸어 두 번째 휴식을 갖다. 부처님은 결국 상한 음식으로 탈이 났다. 배가 몹시 아프다며 쉬어가자고 하셨는데 피가 섞여 나왔다. 목도 몹시 말라 제자인 아난다에게 물을 달라고 했으나 아난다는 얼마 전 500대의 마차가 지나가 마실 수 없다며 세 번이나 듣지 않았다. 하지만, 인근 카쿠다 강물은 깨끗했다. 부처님은 강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신 후 나무 아래 쉬면서 기운을 차리셨다.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목욕하셨던 카쿠다 강에 순례단이 도달한 시각은 오전 5시. 인도 미얀마 스님을 비롯한 신도들이 나와 순례단에게 꽃을 공양하며 환영하다. 카쿠타 강에는 부처님이 목욕하셨던 곳까지 계단이 놓여 있어 순레단이 불상을 모셔 놓고 아침 공양을 하다. 부처님이 기운을 차리신 뒤 다시 길을 나서 히란야바티 강을 건너 사라나무 숲에 이르렀다. 두 그루 사이에 자리를 깔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해가 지는 쪽으로 누워 아난다에게 “내가 오늘 저녁 열반에 들리라” 선언하셨다. 꽃이 필 철이 아닌데 하얗게 꽃이 피었다. 하얗게 꽃이 피고 꽃비가 내리고 음악이 울렸다. 부처님께서 하늘의 신들이 여래의 열반에 임해서 마지막으로 올리는 공양이라고 하셨다. 임종에 이르렀는데도 나중에 온 120세의 바라문 수바드라에게 팔정도를 닦으라 이르시고 귀화 받으시니 마지막 제자였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자 이 지역 부족 말라족이 지금의 다비탑이 있는 곳으로 모셔와 화장을 했다. 그들은 부처님의 몸에 꽃과 향과 노래와 춤으로 6일간 공양하고 7일째 화장했다. 화장 후 사리를 수습해 주변 8개국이 모셔가 탑을 세웠다. 카쿠타 강에서 히란야바타까지는 거의 10km. 고팔가르로 가는 국도는 짐을 싣고 빠르게 달리는 트럭으로 붐비다. 순례단은 고팔가르 시내를 벗어나 넓은 갈대밭 사이로 난 흙길을 걷다. 작은 개천인 히란야바티 강 다리를 건너 힌두교인들의 작은 탑이 여러 기 서 있는 곁문을 지나 부처님 다비탑(라마바르 스투파) 정문으로 들어가다. 순례단은 다비탑 앞에서 이날 행선을 회향하다. 쿠시나가르까지 누적 이동거리 689km.
    관련사료
    [상월결사 인도순례 28일차] 부처님 열반성지 쿠시나가르에 도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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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5월 11일 (불기 2565년)
    남양주 봉선사(주지 초격스님)에서 봉행한 ‘천년 숲을 걷다’ 자비순례에 동참하다.
    봉선사 일주문에서 출발해 광릉수목원과 둘레길을 경유해 돌아오는 총 13km 구간 순례길에 상월선원 회주인 스님을 비롯해 조계종 교육원장 진우스님, 포교원장 범해스님, 불교신문 주간 현법스님, 불교중앙박물관장 탄탄스님 등 중앙종무기관 종무원들과 교구본사 주지 스님 종회의원 스님 50여 명, 동국대 이사장 성우스님과 상임이사 성월스님 등 동국대 법인사무처와 동국대 의료원에서 100여 명, 동국대 농구부 20여 명,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소속 직원 40여 명, 제25교구 봉선사 대중 200여 명과 함께 조광한 남양주시장 부부와 안승남 구리시장, 주광덕 전 국회의원이 동참하다.
  • 2011년 10월 2일 (불기 2555년)
    파리 길상사에서 교민불자 법회를 봉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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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불교 우물안 개구리였음을 다시금 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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